★오여사의 제3의 활동/국보건축물 23선

[국보건축물 23선] 창경궁 명정전 - 왜 동쪽을 향했을까?

하늘위땅 2013. 4. 24. 14:00


창경궁은 성종 14년 옛 수강궁 자리에 창건공사를 시작하여 이듬해 준공되었다. 

별궁으로 건립되었는데 세조의 비 정희왕후(성종의 할머니)와 추존 왕 덕종의 비 소혜왕후(어머니), 예종의 계비 안순왕후(작은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수강궁은 1418년 상왕으로 물러난 태종이 거처할 궁으로 건립이 되었는데 소실되어 그 자리에 창경궁이 세워졌다.

창경궁은 정사를 돌보기 위해 지은 것이 아니고 생활공간을 넓힐 목적으로 지어져 전각으로 수도 많지 않지요.


명정전은 경복궁이나 창덕궁의 정전과는 달리 남향이 아닌 동향이다. 이는 창경궁의 지세에 따른 것이다.

땅 생긴 대로 지세를 거스르지 않고 자유로이 전각을 배치하여 정문인 홍화문과 명정전은 동쪽을 향해 앉았죠.


왜 동쪽으로 앉았나? 땅 모양대로 앉았다는 정답이군요.





명전전은 다른 궁의 정전과 같이 이중의 월대를 두어 그 위에 건물 기단을 마련하고, 

큰 사각 주초 위에 원형의 운두 높은 주좌(柱座)를 조각하여 초석을 배열하였다.  





월대의 형식은 다른 궁의 것과 달리 지형에 맞추어 전면 동쪽과 북쪽 일부만을 이중단으로 하고, 건물 좌우와 뒷편에서는 1단으로 하였다.





 평면으로 보아 정면 5칸, 측면 3칸에 후퇴(後退)를 한 단층 팔작기와지붕으로 겹처마이다.





명정전 '밝은 정치를 펼치는 집' 국보 제226호




월대의 전면에는 명정전 어간에 맞추어 중앙에 삼도의 이중계단이 놓였다

가운데 어계의 폭은 2.4미터이고, 양측 협계(挾階)의 폭은 각 1.3미터이다. 

상하 계단은 모두 6단씩으로, 어간의 답도(踏道) 석판 중앙에 사분심엽형(四分心葉形) 윤곽을 양각(陽刻)한 후 

그 안에 날개를 활짝 편 한쌍의 봉황을 조각해 장식했고, 챌판에도 당초(唐草)와 보상화(寶相華), 운문(雲紋) 등을 정교하게 조각하였다. 

하층 계단 앞에는 명정문과 연결되는 어도가 있고 좌우에 24개의 품계석(品階石)이 있다.



층계를 세 구역으로 나누어 중앙에 폐석을 두었다. 폐석 중심에는 구름속에 노니는 봉황을,

층계석 운두에는 넝쿨무늬를 가득 장식하였는데, 제일하단 디딤돌  운두에는 넝쿨과 비슷하게 구름 무늬를 베풀어서 

여기가 天上임을 암시 하였다


[출처] 창경궁의 전각중심자료|작성자 수연당



명전전의 계단과 문살, 문고리.



까만 벽돌이 깔린 명정전 내부 용상과 일월도 병풍

일월도는 해와 달 중국의 5악중 하나인 서왕모가 살고 있다는 쿤룬산을 주제로 그린 그림. 

임금은 천명을 받아 삼라만상을 통치함을 나타내며 하늘의 보살핌으로 자손만대로 왕실과 나라의 무궁함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음.



대비들을 위한 이궁으로 창건 되었던 곳으로 성종은 창경궁이 동향이므로 임금이 정치하는 곳은 아니라고 하였다.

광해군 8년에 중건되어 오늘에 이르렀으니 현존하는 궁궐 정전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명정전 뒷면 됫간에는 처마 밑에 따로 지붕을 얹은 복도가 있다.



멀리 보이는 정자살 창호는 문정전 뒷면 가운데 칸 창호이다.

다른 궁궐의 정전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형태이다.


오래되고 특이한 그래서 국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