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여사의 제3의 활동/국보건축물 23선

극락에 이르는 길 부석사 - 국보 건축물 23선 무량수전 , 조사당

하늘위땅 2013. 12. 17. 11:00

너무나도 유명한 곳이다.

멀기도 하다. 이곳에서 가자면 맘이 먼저 '멀다 ㅡ.ㅡ;;' 이러는 영주 부석사다.

사과꽃 필때도 맘이 일렁거렸다.

녹음이 우거진 5~6월은 덥기 시작하니 움직일 생각을 못했다.

여름은 너무 더우니 아예 생각조차 안했다.

쌀쌀한 가을이 왔다.

맘이 싱숭해졌다.

작년 느까서야 단풍속에 빠져 정신을 못차리고 허우적거리다 보니 이도저도 아니고 다 놓쳤다.

꼭 단풍을 봐야하는 건 아니였다.

다만 확인을 해보고 싶었다.

부석사의 가을과 범종각 지붕, 안양루와 석등, 무량수전 그 기둥에 서서 눈물을 흘리고 싶었다.

갈때마다 안보여서 통과했었던 조사당과 비스무리한 전각을 보고 싶었다.


친절하지 않은 글로 자극을 한 ' 이용재 선생' 의 책과 '김봉렬 교수'의 한국건축이야기 책 핑계를 붙여도 되겠다

글로 익힌 것을 실전으로 다진다는 의미를 두니 먼 길 떠나기 한결 수월해졌다.


미리 경로 파악을 하고 기차타고 버스타고 또 버스타고 4시간여만에 갑자기 뚝 떨어지 날씨 때문에 스산하기만 주차장에 당도했다

낯설다 

와 본 기억이 없다.

분명 몇번 왔었는데..




가을속으로 빠지고 있는 안양루 그리고 뒤에 숨은 무량수전 참 많이 보고팠다.


일단 배치도 확인

글로 샅샅이 공부한 부석사 탐방 시작


바람이 찹다

사람은 엄청 많다

제대로 된 사진 찍기 힘들겠다






주전골 단풍에 실망하고 지리산 골짝 단풍 이른 탓에 맘 상할라 했는데 단풍 제대로다

완전 이쁘다.

바스락 소리도 안나면서 빨간 것이 앙증맞게 바닥에 널부러져 나 이뿌죵 이뿌죵 하는 것 같다


그래 이뿌당..




그러나 단풍과 더 이상 놀아줄 수가 없었다

관광버스 한대 들어온 모양이다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 우리의 사색의 시간을 방해하려 했으므로.


아! 진짜 많이 몰려온다

대군이다.


일주문을 서둘러 통과하고 노랑 은행나무 구경에 냄새 나는 열매 밟는 줄도 모르고 푹 빠졌노라니 천왕문이 기다리고 있다

정말? 

물이 들 탄 천왕문 앞 단풍은 여전히 녹색이다. 





부석사를 돌아보려면 높고 낮은 대석단(大石檀)의 계단을 수차례 지나야 한다

대석단은 법당과 주법당(무량수전) 영역을 평지로 만들기 위한 장치라고 하는 것을 이제서야 이해를 하다니..(김봉렬의 한국건축이야기)


무량수전이 아른다운 보물이라도 부석사 전체를 이루고 있는 석단들의 집합적인 구성에 비할 바 아니라는 김봉렬 교수의 말이

딱 맞는 것 아닐까 생각을 하게 된다.  가람의 상승적인 미학을 구축하는 주요한 건축물이랄까?

 

"부석사의 참 맛은 아래로부터 차근차근 걸어 올라가면서 절 집이 들어 앉은 모양을 하나하나 음미할 때 깊어진다"

고 유홍준 교수의 말씀도 완벽하게 이해가 된다.

음미음미.



31계단을 오르면 천왕문이다

왜 31계단일까? 이건 생각해보지도 못한 문제네..

무턱대고 계단을 놓친 않았을텐데 말입니다.





천왕문을 지키고 선 4대천왕이 뛰쳐나오고 싶어 할 만한 가을이 주변으로 펼쳐진다

캬! 좋다 라고 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짧은 단어 선택 실력이 아쉬울 뿐.

저렴한 디카의 한계로 이만큼 표현해내지 못하는 안타까움까지 더해진다.

기필코 마련하리라 좀 나은 카메라를.





범종루 가기전 새로 생긴 건물이 있는데 이걸 뭐라고 부르나 갸우뚱

찾아보니 회전문을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회전문? 빙글빙글 도는 회전문?


[회전문: 양쪽에 긴 날개채를 가진 솟을 대문 형식의 문이랍니다. 중생들에게 윤회 전생을 깨우치려는 의미라고 합니다]


으흠 글쿤요

깨우침을 얻지도 못했지요 무슨 문인지 알지도 못했으니 있는 줄도 몰랐으니 사전 조사 또한 안되었으니.






약간 틀어져서 범종루가 떠억 버티고 섰다. 그때는 몰랐는데 글로 먼저 익히고 보니 보인다.

길이로 선 것과 보이는 지붕과 옆의 그 뒤 지붕이 다르다는 걸




이렇게 .

다른 건물이라면 측면이 되었을 합각면이 정면이 되고 앞은 팔작지붕 뒤는 맞배지붕의 모습니다

부석사의 지형이 좁고 깊게 형성되어 있어서 안양루에서 범종루를 보면 범종각 맞배지붕은 마치 멀리 펼쳐진 소백산맥의 

연봉들을 향해 날아가는 화살과 같다고 (김봉렬의 한국건축이야기) 했는데 딱 맞네


우르르 몰려 오는 관광객(?) 들은 알까 모를까?

알고 보니 정말 재미있다.







또 약간 틀어져서 언뜻 안양루가 보인다.

안양(安養)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淨土)라는 뜻이란다

진짜 극락세계에 든다는 것인가..좋구로






극락세계로 들어가는 길이 쉽지는 않도다

높은 계단이 허벅지를 잔뜩 긴장 시킨다.

높은 돌벽에 붙은 담쟁이는 힘들지 않을까?


한숨이 휘이 났다.

나이 드신 어르신들을 아예 돌아 가시네







저 멀리 내 집 앞마당 인양 펼쳐진 풍경에 풍덩 빠지고 말았다

풍수지리를 몰라도 그냥 좋다

하늘인가 산인가 땅인가 구름인가

안양루 옆에서 한숨을 돌리고 펼쳐진 이 그림이 사실은 보고싶었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꾸역꾸역 밀려오는 사람들 때문에

이 자리마저 빨리 비켜줘야만 했다


"저 사진 좀 찍겠습니다 .."


비켜달라는 말이지 쩝..





시선을 놓지 않고 옆쪽 자리로 이동을 했다

시야가 좋다


다들 탄성을 질러댄다.


좋쿠나.





안양문 아래 공포 사이로 뭔가가 보인다고 하는데 뭘까요?

특히 아침 햇살이 비칠때 보면 보인다고 하는 이것은?


(직접 확인하세요)





훽 뒤돌아 보니 무량수전이다

무슨 말을 하리

너무 유명한 건물이니 이런저런 설명을 붙이는 것 조차 부끄러울 따름.


안동 봉정사 다음으로 오래된 목조 건물이고 무량수전 현판은 공민왕이 쓴 것이고 ,극락을 지키는 아미타불을 모신 전각이면서

특이하게도 불상이 건물 서쪽에 앉아 동쪽을 향한다는 거 그래서 일반적인 절 집의 출입구와 다르다는 거




협칸으로 드나들어야한다고 알고 있는데 퇴칸을 열어 두고 사람들이 드나들었는데...



무량수전의 아미타불은 이승 아미타불로서 매우 득별한 존재이다. 일반적인 아미타불은 관음세-대세지보살이라는 좌우협시불을  대동하는 데 

반해 일승아미타는 좌우협시불이 없다. 또한 열반에 들지 않기 때문에 사리묘를 뜻하는 탑을 세우지 않는다. 극락세계를 상징하는 무량수전 

내부에는 서방정토의 주인인 일승 아미타불이 앉아 3층석탑으로 상징되는 동쪽 사바세계를 바라보며  극락왕생자들을 맞이하는 구도이며, 무량수전 앞마당 역시 교리를 따라 탑을 세우지 않고 광명극락을 뜻하는 석등으로 밝히고 있는 구도이다.  모든 구성이 정토사상의 구도를 따르고 있다. 무량수전 전면에는 석등만 있다. 동쪽에 3층석탑은 무량수전의 아미타불과는 무관한 독립체이며 아미타불과 대비되는 석가모니불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조사당으로 유인하기 위한 장치  


.....김봉렬의 한국건축 이야기에서






석등은 무량수전 중심선에서 50센티 정도 서쪽으로 치우쳐있다. 정중앙에 놓았을 경우 안양루를 막 올라온 흐름과 맞닥뜨려 

답답해지기 때문이다. 참배자의 흐름을  동쪽 빈공간으로 유도한다 무량수전의 주 출입구는 중앙의 어칸이 아니라 동쪽의 협칸이 되므로 

(아미타불이 서쪽에 앉은 까닭에)


비켜선 이유도 알았다.





오래전 왔을 땐 '부석' 이 있는 줄도 모르고 그냥 슬쩍 딜다보고 간 수준이였나 보다

다시 와보니 부석임을 알겠다.


해설사는 그자리에 서서 세번째 팀에게 부석사의 유래를 똑같은 내용으로 설명을 하고 있었다


이용재님의 글에서 보자면 


부석(浮石)이 무슨 뜻일까요.

그 옛날 의상대사를 사모한 당나라의 선묘아가씨가 돌을 들었다 놨다해서 부석이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다.


역시 실망시키지 않으시는 이용재님 이시다 만세!


의상이 자신의 교학(화엄종)을 펼치기에 적합한 곳을 마침내 발견하였는데 이곳에는 이미 다른 종파의 무리 500명이 둥지를 틀고서 

부석사 창건을 방해하고 있었다. 이때 선묘낭자가 용으로 변신하여 공중에서 거대한 바위를 떨어뜨렸고 이 불가사의한 광경을 목격한 

기존의 무리들이 항복하여 부석사 창건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무량수전 서쪽에 뜬 돌이 있고 선묘각이 세워졌다.


*선묘낭자는 의상대사를 사모한 중국의 처자라고 하지요. 혼인으로 인연을 맺을수 없으니 이렇게 의상대사를 도와줬다는....





[출처] 부석사|작성자 이용재






조사당으로 이끄는 것이 저기 3층 석탑과 바닥의 전돌이라는 것 확인 완료

조사당으로 올라가 봅니다.






3층 석탑에서 내려다 보니 이것 또한 그림이라..





짧지만 기억에 남을 만한 경사진 작은 오솔길을 오르니 조사당이 나옵니다.

조사당은 의상대사 초상을 모시고 있는 곳인줄은 알지요?

건물이 아주 단순합니다

입구와 통풍 창 두개 .. 그래도 국보랍니다

내부 벽에 그려져 있던 벽화도 국보인데 부석박물관에 가면 따로 볼 수가 있답니다


철장을 친 저 안에 있는 것은 의상대사가 꽂았다는 지팡이라 자란 선비화가 있습니다.

실제로 의상대사가 심은 것인지는 확실하지는 않으나 수령이 500년은 넘은 것이라고 하네요

골담초인가 싶은데 맞나?






다시 호젓한 오솔길을 잠시 걸어 응진전이 당도를 했다

조사당을 본떠 만든 곳이라고 한다.




자인당에는 근처 폐사지에서 옮겨온 석조여래좌상이 모셔져 있고 응진전은 석가의 제자인 나한을 모시고 있군요






다시 돌아 내려오는 길 시선을 잡아 끄는 저 먼 태백산맥이 시원하이 가슴을 튀웁니다.

휴!


완전 아름다운 내나라 내강산입니다.






내려가는 길 다시 범종루를 보니 정작 종은 없고 법고와 목어만 달렸네

이상타하면서 둘러보니 저짝에 범종각이라고 종이 있었다.


좀 더 세밀하게 공부를 해야 했구나

잠시 후회 3초!


아찔한 가을 부석사에 정신이 홀린 관계로 딱 3초만에 덜 공부해온 공간을 채워버렸다








이 풍경이

많은 사람들이..






한그루 단풍의 붉음이 주변 망설이는 초록 이파리의 우유부단함을 덮어버렸다

하하 가을 아닌가..


내 나무인양 그 아래서 잠시 볕도 쬐고 온갖 포즈로 사진도 찍어 대고 난리부르스를 치노라니

멀찍이 둘러가던 한 무리의 여자사람들 "옴마 저기 이뿌당" 이럼서 밀려오길래 부산스러워 자릴 피하려니

아숩기만 했다.


좀 더 있어도 되는데  쩝!



부석사는 신라고승 의상대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그가 창건했다는 사찰이 줄잡아 100여개소가 넘지만 대부분은 사찰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기 위해 나중에 가식된 것이다.

기록에 따르면 의상이 창건한 사찰은 양양 낙산사와 부석사뿐이고 유명한 화엄십찰마저도 대부분 의상의 제자들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한다. 

더욱이 낙산사는 임진왜란과 한국전쟁 산불로 여러차례 불에 타버려서 의상의 체취를 느낄수 있는 곳은 부석사가 유일하다,


.... 김봉렬의 한국건축이야기에서 알게 된 사실입니다.



책을 읽고 확인하고 다시 의문을 품고 다시 정보 수집을 하고 답사를 다녀오고  " 머할라꼬?" 라고 묻는 사람들이 왕왕있다.
"냅둬유 내 좋아서 하는 일이니 머할라꼬 하는 건 아니고 그냥 나으 만족을 위한 것" 이라 답을 했는데...

결국 따라잡았다 부석사의 가을
내년 봄 사과꽃 필 무렵에 다시 잡아 보리 부석사의 '봄'

바람이 차고 손이 시려서 코가 찡해 비염이 도지나 걱정을 했던 가을 바람쐬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