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살기- 제주에서 첨 만난 태풍
여름 다 지나고 무슨 태풍?
태풍이 온다는 날 해질무렵
하늘은 노을을 예쁘게 그렸다
"무슨 태풍이 온다고 기미도 안보이는데"
붉게 물든 노을을 이쁘다면 감상만 했다.
그 밤에 바람소리 심상치 않더니
빗방울을 사정없이 창을 때렸다
엎드려 책을 읽으려다 심란한 바람소리에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1시경부터 태풍은 방문을 본격적으로 하셨나보다
잠을 잔 듯 만 듯
설핏설핏 바람소리에 깼다 자다 반복을 했다
새벽 4시경 뭔가 떨어지고 날아가고
부서지는 소리에 잠을 잘수가 없었다
배 방에 물 들지 않았지만
창을 열어보지조 못하고 누워서 태풍이 무사히 지나가기를 빌었다
아침 출근길 현관을 나서니
옥상 문짝이 떨어져 널부러져 있고
벽돌들이 산산조각이 나 굴러다녔다
"아이고야 바람이 가당찮았구나"
길거리는 떨어진 나뭇잎과 가지와 날아온 돌들이 잔치를 하고 있었다
바람이 거칠게 불어서 우산은 감히 펴지도 못하고
온몸에 힘을 주며 걸었지만 한꺼번에 불어오는 바람에
발이 땅을 떠나 축지법을 사용하 듯 날아서
억지로 뛰다시피 날아서 위태위태하게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큰 도로변도 주변에서 날아온 돌과 흙과 나무와 여러가지들이 뒹굴고 있었다
물이 덮친 회사에서 복구 작업을 하고
점심 먹으러 나온 예래동 바다는 파도만 약간 높았다
차르르 햇빛에 반짝반짝 무심하게도 말이다
곳곳에 태풍 피해 소식이 들려 오는 가운데 퇴근길에 하늘을 올려다 보니
구름도 없이 말끔하다
"세상에 흔적도 없네 하늘은"
작은 달만 지 할 일을 위해 무대에 나온 듯 덤덤하게 떴다
여전히 노을은 이쁨을 자랑하듯
서쪽하늘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제주에서 처음 만난 태풍은
지진의 공포보다 덜 하지는 않았다
새삼 제주에서의 바람이 주는 무서움을 몸서리치게 느꼈다
"제주에서 살려면 바람과 습기를 견뎌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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