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생각

[책] 라일락 붉게 피던 집_송시우 작가

하늘위땅 2025. 5. 28. 22:00
728x90

 

 

 

라일락 붉게 피던 집, 기억의 집에 피어난 상처의 향기

 

라일락은 봄의 문턱에서 피는 꽃이다. 향이 진하다. 달콤한데 오래 맡고 있으면 어지럽다.

 

송시우의 첫 장편소설 《라일락 붉게 피던 집》은 바로 그런 라일락 같다. 아련한 유년의 향기를 따라 들어간 이야기 속에는 오랫동안 잊고 지낸 고통과, 알지 못했던 진실이 숨어 있다.

 

수빈은 잘 나가는 대중문화 강사다. 신문사의 칼럼 요청을 받고 오래전 살았던 집, ‘라일락 하우스’의 기억을 꺼낸다. 연탄 냄새가 배인 골목길, 옆방에 살던 언니와 오빠, 옥상에서 뛰놀던 아이들. 가난했지만 푸근했던 그 시절을 써 내려간 글은 큰 반향을 일으킨다. 사람들은 수빈의 기억에 공감하고 위로받는다. 수빈 자신도 그 시절을 떠올리며 마음이 따뜻해졌다고 믿는다.

 

그러나 어느 날, 잊고 있던 기억 속의 오빠가 사실은 연탄가스 사고가 아닌 ‘살해’되었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듣는다. 어른들의 말에 끼어들 수 없던 아이였던 수빈은 이제 어른이 되어 그 진실을 되짚는다. 그 순간, ‘행복했던 유년’은 조각난다. 수빈은 충격 속에서 묻는다. 과연 나는 무엇을 기억하고 있었던가. 진실을 모른 채 행복했다고 믿어온 그 시간은 무엇이었을까.

 

송시우는 이 작품에서 기억과 진실, 유년과 부조리한 현실을 교차시킨다. 사람들은 흔히 어린 시절을 따뜻하게 기억하지만, 그 안에 덮어둔 폭력과 차별, 침묵의 공범자였던 나 자신을 마주하기란 쉽지 않다. 이 소설은 그 어려운 일을,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해낸다.

 

1980년대 다가구 주택의 풍경은, 어쩌면 그 시대를 살았던 이들에게만 허락된 암호일지도 모른다. 방 안까지 연탄 냄새가 스며들고, 가족끼리도 빈방 하나 얻기 어려웠던 시절. 몇 가정이 한 화장실을 쓰고, 옆방 사람의 싸움 소리에 밤잠을 설쳤던 시간. 작가는 그 시절의 일상성과 정겨움을 섬세하게 복원하면서, 그 속에 숨어 있던 잔혹한 진실을 뚜벅뚜벅 파헤쳐간다.

 

《라일락 붉게 피던 집》은 단순한 미스터리 소설이 아니다. 기억을 둘러싼 윤리와, 진실을 마주하는 용기, 그리고 그로 인해 다시 삶을 구성해 나가는 한 사람의 성장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누구도 죄가 없지만, 모두가 죄의 일부였던’ 시절의 이야기. 그 슬프고도 아름다운 진실을 담담히 따라가다 보면, 독자 역시 자신의 오래된 기억을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 송시우는 묻는다. 당신의 라일락은, 어떤 향기로 피어 있었는가.


리뷰 요약:

  • 작품 분위기: 향기로운 유년의 기억과 숨겨진 진실이 공존하는 따뜻하고 서늘한 미스터리
  • 핵심 주제: 기억의 왜곡, 유년의 환상, 진실과 용기
  • 추천 대상: 1980~90년대 어린 시절을 보낸 독자, 사회적 의미가 담긴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