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같다. 아침부터 후텁지근 4층 계단실까지 습이 들이닥쳤다. 웬만하면 계단을 이용하는데 습기 찬 계단 내려오다 미끌 자빠질 뻔했다. 순간적으로 욕이 나오려 했다. '좋은 말 순한 말 착한 말' 로 억눌렀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도 갚을 수 있다는데. 습관은 아니다. 그냥 센 척하는 허세였다. 착하고 선하고 깨끗한 말을 해야지 다시 다짐했다.
비 오면 열린 창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물 바다는 짐작 가능한데 이런 날 계단실 창문을 왜 열어 두었을까. 내려오면 하나씩 닫았다. 제주도에서 내리는 비는 수직하강이 안된다. 수평으로 공간이 있다면 어디든지 안착을 하기 때문에 문 닫는 것은 필수다. 미끌하면서 휘청거린 다리에 약간의 뻐근함이 남았다. 다시 욕지거리가 나올 뻔했다. 나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데 ㅋㅋ
장 우산을 펼쳤다. 실 같은 빗줄기가 힘 없이 우산아래로 들어왔다. 우산도 소용 없겠다 싶어 접었다. 맞아도 적당히 축축하겠다 예상이 되었다. 아이들은 실비를 맞고 그냥 학교로 갔다. 젊음의 활력은 비도 막아 주는 모양이다. 그 시절 나도 그랬을까 피식 웃음이 났다. 우산을 접었더니 기분이 금방 축축해졌다. 날씨에 감정이 휘둘리는 것도 나이 듦에 따라오는 것인가 보다. 다시 우산을 펴고 천천히 비를 덜 맞으려고 걸었다.
실비는 계속 내리고 따라 내린 꽃들이 별이 되었다. 별이 땅바닥에 안자 나비처럼 다시 날아갈 꿈을 꾼다. 이루지 못할 꿈일지언정 꾸는 동안은 무척 행복하리라.
궁금하면 알고 싶다. 밟히는 꽃송이를 보며 너의 이름은... 떡쑥꽃이라고 한다. 떡쑥 쑥 같이 생기지 않았는데 쑥이라고. 하기사 쑥이라고 내가 아는 종류만 있는 것은 아닐터. 여러 종류의 쑥이 있다고 보면 떡쑥도 있겠다. 이해 완료
콩이 달린다. 이름이 등갈퀴나물이란다. 이런 종류의 야생콩과 식물이 꽤 많다.
감귤 꽃 향이 연해지면 찔레꽃, 때죽나무, 돈나무, 꽃댕강 등의 꽃이 바통을 이어 받는다. 흰꽃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꽃향이 너무 좋은 멀구슬나무에도 연보라색 꽃이 막 향기를 내기 시작했다. 근처에 멀구슬나무 한그루만 있어도 멀리까지 그 향이 퍼진다.
유채꽃 갯무꽃 무리가 있는 곳은 씨앗이 엄청나게 익어가고 있다. 유채꽃은 산수국에게 꽃자리를 넘겨주었다. 기다리면 수국꽃이 핫하게 기다릴 것이다. 그 옆에 낮게 퍼지는 야생딸기는 붉은 딸기를 숨기고 있다.
도로변 화단에도 새로운 꽃들이 자릴 잡았다 언제 작업을 한 것인지 어제 없었는데 아침에 보니 가득하다. 작은 꽃 송이들이 오밀조밀 딱 취향에 맞다. 가로 꽃들은 어쩜 내가 좋아하는 유형의 꽃을 심을까 싶다. 한참은 땡볕에 서서 꽃들을 보았다. 자연적으로 피는 꽃도 좋은데 사람 손이 탄 꽃은 더 눈길이 간다. 화려하거나 고급스럽거나 앙증맞거나 그렇게 관심을 받도록 재배된 식물들이니까
멀구슬나무꽃의 향기가 바람타고 내 창 앞까지 온 모양이다. 사라진 구실잣밤나무 향기를 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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