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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생각

달게 추운 날의 다짐

by 하늘위땅 2025.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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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에 뿌옇게 서리가 앉은 아침이었다. 방 안 공기는 밤새 묵직하게 가라앉아 있었고, 어쩐지 어깨를 짓누르는 듯한 무게감마저 느껴졌다. 해야 할 일들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지만,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은, 그런 날이었다. '오늘은 그냥 이불 속에서 허우적거릴까?' 게으른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문득, 창밖의 싸늘하지만 청량해 보이는 공기가 그리워졌다. 답답함에 못 이겨 두꺼운 외투를 걸치고 문을 나섰다.

 

"흡-"

 

폐부 깊숙이 들어오는 공기는 예상대로 차가웠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차가움이 칼날처럼 날카롭지 않고, 마치 잘 익은 과일의 단맛처럼, '달게' 느껴졌다. 정신이 번쩍 뜨이는 싸늘함. 볼 끝이 아릿했지만, 오히려 텁텁했던 머릿속이 유리알처럼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더없이 파랬고,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입김은 하얀 나비처럼 흩날렸다. 모든 것이 선명하고 또렷하게 제자리에 있는 듯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차갑고 상쾌한 공기도, 저 파란 하늘도, 그냥 존재하는 게 아니지 않은가.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제 빛깔을 내고 있는 거겠지.'

 

 

달게 추운 날의 다짐
달게 추운 날의 다짐

 

 

 

방 안에서 무기력하게 늘어져 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해야 할 일들 앞에서 '나중에', '다음에'를 외치며 시간을 흘려보내던 모습. 어쩌면 나는, 내게 주어진 소중한 시간과 기회들을 너무 '허투루' 대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이 달큼하게까지 느껴지는 차가운 공기가 마치 꾸짖는 것 같았다. "정신 차려!" 하고. 그래, 이렇게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순간들이 있는데, 이렇게 맑은 정신으로 세상을 마주할 수 있는데, 어영부영 흘려보내기엔 너무 아깝지 않은가.

 

"허투루 하면 안 되긋제."

 

나도 모르게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거창한 계획이나 대단한 목표가 아니더라도 괜찮았다. 다만, 지금 이 순간, 내가 해야 할 일들, 내가 마주하는 사람들과 시간들을 좀 더 소중하게, 정성껏 대해야겠다는 작은 다짐이 마음속에서 조용히 차올랐다. 무겁게 가라앉았던 마음이 어느새 가벼워져 있었다. 싸늘한 공기는 여전했지만, 그 차가움 속에서 오히려 따스한 온기가 피어나는 듯했다. 그것은 아마, 작은 다짐 하나가 가져다준 마음의 온기였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웠다. 달게 추운 날, 나는 작은 다짐 하나를 얻었다. 그리고 그 다짐은 분명, 앞으로의 내 하루하루를 조금 더 단단하고 의미있게 만들어 줄 것 같았다. 얼었던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그런 힐링의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