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겨울에는 봄의 길들을 떠올릴 수 없었고, 봄에는 겨울의 길들이 믿어지지 않는다. 다 지나오고 나도, 지나온 길은 처음부터 다시 가야 할 새로운 길이다. 그래서 모든 길은 처음부터 다시 가야 할 새로운 길이다’
-김훈 자전거 여행

봄에는 겨울의 길들이 정말 믿기지 않는 장면이 된다. 봄이 와서 좋다. 아직 바람 속 숨은 한기는 느끼지만 강렬하게 눈부심을 드러내는 햇빛이 막아 주니까. 그 봄의 길을 따라 매일 아침 천천히 걷는 산책 요즘 최고의 시간이다. 더디게 온 봄이라 그 가치가 높아졌다. 더디게 왔다 번개처럼 도망갈 것을 알기에 휘젓고 다니고 있다.

꽃이고 꽃이다. 오늘 꽃은 내일 꽃과 어울린다. 하나씩 이름을 알아간다. 안다는 것이 주는 행복은 두 배다. 그 봄날의 아침 걸었던 길 위의 이야기가 각인되어 버렸다. 혹시 다음 봄에 잊어버려고 금방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오래전 벚꽃길을 따라 십 리를 걸었던 그 시간을 떠올릴 수 있는 것처럼.

수수꽃다리 예쁜 꽃을 올봄 처음 보았다. 길을 따라 걷지 않았다면 알지 못했을 것이다. 마음이 이끄는 대로 구름 위를 걷는 듯 걸었더니 그 꽃이 가지 끝에서 반겨주었다. 넓은 공원 갖가지 나무와 꽃이 있었지만 멀리서도 도드라지게 보였다. 작은 꽃들이 오밀조밀 다닥다닥 붙어서 피었다. 가지를 살짝 잡고 코앞으로 내렸다. 은은한 아는 향이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작게 뭉친 꽃송이들이 옅은 향을 바람결에 실었다. 은은한 그 향이 기분 좋은 아침에 영양제가 되었다.

꽃비가 날리는 아침이다. 벚꽃이 지고 있다. 급하게 피었다가 천천히 잎을 내길 바랐지만 속도는 어쩔 수 없다. 빠름과 빠름이 늘 대칭이다. 균형이 맞아야 흐름이 끊이지 않는 것인가 보다. 아름답게 떨어지는 한 장 한 장 작은 꽃잎이 길 위에 앉았다.

‘ 풍경은 사물로서 무의미하다. 그렇게 말하는 편이 덜 틀린다. 풍경은 인문이 아니라 자연이다. 풍경은 본래 스스로 그러하다. 풍경은 쓸쓸하거나 화사하지 않다. 풍경은 자유도 아니고 억압도 아니다. 풍경은 인간을 향해 아무런 말도 걸어오지 않는다. 풍경은 언어와 사소한 관련도 없는 시간과 공간 속으로 펼쳐져 있다. ’
_자전거 여행 중
시간과 공간 속으로 펼쳐진 풍경은 언어로 표현하기 어렵다. 보는 것과 느끼는 것과 생각으로 정리하는 것이 다른다. 직감적으로 다가온다. 그 봄날이 이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지만 오늘 봄 길 산책으로 충분히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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