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여사의 제3의 활동/아름다운 내나라 여행

남해 상주은모래해수욕장 그리고 추억한자락

하늘위땅 2011. 5. 4. 10:00

금산 정상 정복 후 보리암에 들러 약수 한잔 마시고 꽉 막힌 시야를 안타까워하며 올랐던

그 계단길을 다시 후덜거리며 풀린 다리로 조심스럽게 1시간에 걸쳐 금산입구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생각보다 짧은 시간에 끝난 산행겸 보리암 탐방이였다.

계획에도 없던 추억속의 장소 근처에 있는 상주해주욕장을 갔다오기로 하고 타고 왔던

상주행 버스를 기다리기 위해 휴게소 매점에서 시원한 녀석을 사 물고 나무 그늘에 앉았다.

 

30여분을 더 기다려야 1시경에 버스가 도착을 한다고 해서

시원한 녀석을 쪽쪽 빨아가며 아이처럼 다리를 흔들면

마늘쫑을 고르고 묶는 주인아저씨를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었다.

 

"아지매는 어디서 왔소?"

 

아~ 그래 아무리 차려입어도 아지매티가 나는 나이구나 이젠...ㅡ.ㅡ;;;

 

"부산서 왔어예"

 

아니 부산이 아니잖아 왠 부산...

생각지도 않게 부산이란 지명이 왜 튀어나왔는지...

 

"거는 머하러 가는교?"

 

앗따 아저씨 관심폭발이시다

 

"사진찍으러요"

 

"머 사진찍을끼나 있나?"

 

"...."

 

"그리 얼굴 싹다 가리고 다니면 그집 신랑도 못알아보지요?"

 

"아니 왜 모를까요 알지 저 멀리 걸음만 알지요?"

 

"아니 모를끼라요 내는 모르겠던디요 당췌"

 

아저씨 무슨 가슴속 말을 하시려나.. 같이 대화속에 묻혀 말어 망설이는데

버스가 보였다

휑하니 길을 건너기 위해 일어섰다.

다행히다 마침 버스가 와서...ㅎㅎ

 

버스비 1200원이란다

버스로 5분여 만에 도착한 상주해수욕장..

은모래해변이라고 적혀있다.

 

추억의 한자락 꺼집어 내면서 입구로 향했다.

 

 

 

 

아! 기억난다 송림..

그때 있었던 그 나무들이 여전히 그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때는 바야흐로 25년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은행에 바로 덜컥 취직이 되어버린 풋내기 사회초년생

천방지축 사회생활은 행복했고 즐거웠고 아름다웠으며 매일매일이 신이 났던 그 때였다.

 

한달에 한번 회식이 있었고 매주 모임이 있었으며

매주 산행 모임까지 완전 별천지에 온 듯 그 시간속에 묻혀 살았던 그 시절..\

 

어김없이 여름휴가 기간은 돌아왔고

한 지점에 열댓명씩 근무했던 여직원들의 단합대회를 은행 하계휴양소가 설치된 남해 상주해수욕장으로 정했다.

토요일 오전근무를 했던 그 시절

후딱 오전 근무를 마치고 은행에서 마련해준 셔틀버스를 타고 해수욕장으로 고고고!

 

시장에서 산 나름 이쁜 수영복 입을 생각에(몸매 생각도 안한 철부지 처자였음) 더 설레였는지도 ..

티브이에서 보았던 해수욕장의 젊음을 기대한 건지요 하하하하

 

 

 

 

 

황사가 심하게 바다까지 내려 앉은 날이다.

은모래....사장..

 

모래가 곱지 고와..

 

 

 

 

 

송림이 든든하게 지켜주는 여름의 상주는 굉장히 괜찮은 해수욕장이다.

모래도 곱고..

 

 

 

 

 

 

이 쪼매난 발은 누구것이냐?

 

넘들이 보던가 말던가 그냥 신발 벗고 양말 벗고 맨발로 모래사장을 걸었다.

뜨끈한 모래를 밟으면 무좀도 없어진다고 하더만(저 무좀은 없어욤)...

 

발바닥의 감촉이 보드랍고 좋았다.

 

자라다 만 것 같은 저 발좀 보소 하하하

맞는 신발이 있는 것이 다행이지 다행이야...

얼라들 신발을 신어도 맞을 사이즈군요 .

 

 

 

 

 

 

 

한참을 아이처럼 모래를 맨발를 걸으며 황사를 원망했다.

날씨가 좀 더 좋았더라면 바닷물에도 발을 담그는 것인데...

 

모래사장이 바닷물과 바로 접한 건 아니였다.

초록의 해조류가 모래사장 한부분을 점령하고 있었기 때문이였다.

파래인가?

은모래해변이 급 초록칼라 해변으로 변하는 순간이였다

 

왜 이런거지?

밀려온건가?

바다가 멀리 도망간건가?

빙하가 녹아서 해수면이 높아졌다고 하던데 여긴 더 내려갔나? 등등

맨발의 오여사 벼라별 생각을 다했다.

 

 

 

 

 

평일 그것도 월요일..

상주해수욕장을 찾은 사람들 꽤나 되었고 특히 어린 학생들도 제법 되었다.

 

'학교 땡땡이치고 온건가?'

 

이 궁금증이 사람잡는다.

그냥 다가가 물었다.

 

"아이들이 학교 안갔나요?"

 

힐끔 그게 뭐가 궁금하냐며 쳐다보면서 대답은 또 잘 해주신다.그 아주머니

 

"체험활동 신청하고 왔어요"

 

서울내기들이다.

2박3일 여행중이라는 답변..

아~ 그렇구나

 

우리는 학교 안가면 죽는 줄 알았는데 요즘은 학교는 그닥 중요한 곳이 아닌가보다..

 

 

 

 

다시 추억속으로 쑥 빠져듭니다.

 

오후의 뜨거운 햇빛이 내리쬐는 여름의 하계휴양지 상주해수욕장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우리들의 환호성을 덤썩 안으며 두팔을 벌렸고 심하게 요동치는 난 어쩔줄 모르고 즐거웠다.

고등학교때 처음 보았던 해수욕장에서의 2박3일 하계수련회 이후 바다는 늘 로망이였기에

벌렁거리는 심장의 움직임을 희열까지 느끼며 즐기고 있었다.

 

하계휴양소로 정해진 민박집이 다들 짐을 부리고 서둘러 수영복으로 갈아입기 시작했다.

보잘것 없는 두리뭉실 오동통했던 오여사도 알록달록한 수영복을 갈아입고

바다로 뛰어들 준비를 했다.

 

열댓명의 아가씨들이 한꺼번에 바다로 향하자 백사장에 있던 젊은 청춘들의 시선은 한꺼번에 뜨겁게

우리들에게 향했다.

아랑곳하지 않은 우리들을 물속에서 여름의 젊음을 그냥 맘껏 즐겼다.

그렇게 한참을 물놀이 정신이 빠져있다 실수로 깊은 물속으로 쳐박힌 오여사.

물 항거시 마시고 기어서 나왔다나 어쨌다나.

수영을 못하니 우끼(튜브)만 잡고 있다가 파도때문에 놓쳐 그냥 쳐박혀버린 것.

 

짠 물 실컫 먹고 기운이 쭉 빠져 민박집에 널부러져 한참을 헤매고 있다

물놀이 끝난 그녀들과 준비해온 것들로 저녁을 먹고 해가 빨리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왜? 왜?

 

 

 

 

 

 

맨발의 중년 놀음을 30여분에 걸쳐 끝내고 추억속으로 잠깐 풍덩 빠진 뒤 다시 읍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을 찾았다.

버스 시간을 알아보니 또 30여분을 기다려야 한단다.

마침 길건너 작은 초등학교가 눈에 띄었다.

 

작은 정문을 통과하니 운동장에선 아이들이 즐거운 게임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아~ 저런 놀이는 어린시절 운동회에서나 봄 직한 것 아닌가?

 

그늘에 앉아 아이들과 2명의 선생님이 함께하는 즐거운 야외활동을 므흣하게 지켜보았다.

 

 

 

 

3명씩 뛰어서 사다리 통과하고 훌라후프 돌리고 자리입고 뛰기였다

완전 어린시절 운동회에서 했던 그 경기였다.

 

재미있어 하는 아이들과 젊은 선생님의 목소리가 운동장을 가득 메웠고 웃음소리가 상쾌햇다.

 

 

다시 추억속으로 빠져듭니다

저녁을 먹고 다들 약간의 휴식시간을 가진 뒤 꽤나 어두워진 해수욕장 탐방에 들어갔다.

송림 끄트머리 부분에 뭔가 반짝이는 불빛과 신나는 음악은 우리의 발걸음을 재촉했고 이끌었다.

 

북적이는 사람들과 밤바다 백사장..

젊음이란 건 그냥 열정 그 자체 아닌가.

 

아가씨 열댓명이 우르르 반짝이는 불빛과 음악을 따라 움직이니 또 따르는 무리는 있는 법.

 

우리는 겁도 없이 야외디스코장으로 향했고 그날밤 그 천막야외디스코장은 불이 났다는 거.

아가씨 열댓명이 들어가자 주변의 젊은 총각들도 죄다 그 천막디스코장으로 온 건 당연지사.

 

초저녁에 시작된 광란의 디스코 타임은 밤이 깊도록 식을줄 몰랐고

한낮보다 더한 땀 세례를 맞으면서도 즐거웠다.

 

아는 이 적은 곳에서의 광란의 밤 그리고 ...젊음 아니 풋풋함..

 

음악은 갈수록 빨라지고 우리들의 몸짓도 빨라지면서 심장도 격하게 빨라졌다.

한잔 술로 잠시 갈증도 물리고 또 흔들고 흔들고...

한몸이 된 열댓명의 아가씨들 그리고 주변의 총각들...

 

그날밤 그 야외천막 디스코장은 폭발일보직전이였으리라

그땐 몰랐지...흔들고 논다고 정신 빠졌거던...

아주 위험한 행동을 멋도 모르고 하고 있었던 것이였음을 그땐 몰랐지

(아무일도 없었기에 더더욱)

 

그런데 그때 안면이 있는 얼굴의 젊은 총각들이 보이는 것이였다.

술기운에 춤기운에 홍조 띈 얼굴과 풀려버린 눈으로 긴가민가했는데

입행동기 남자녀석들도 우리를 따라 놀러 온 것이였다.

그땐 몰랐지 정말..그 녀석의 눈빛을...?

( 그 녀석과의 엉뚱한 사연이 궁금하시죠? 제 블에 숨어있는 이야기 중에 나온답니다)

 

그렇게 광란의 밤을 무사히 보내고 다음날 우리는 셔틀버스를 타고 마산으로 무사히(?) 돌아왔다.

 

태어나 그렇게 온 몸과 마음으로 내놓고 흔들고 놀아본 기억이 없는 걸로 봐선 그날밤은 굉장한 밤이였지 싶다

언제나 제일먼저 여름이면 떠오르는 추억 한자락..

남해상주해수욕장의 광란의 디스코 타임 끝!

 

 

 

 

 

아이들 12명 그리고 선생님 2명.

속닥한 학급이다.

아주 밀착된 학습이 될 것 같은 학교 같다.

아이들의 저 놀이도 그리움의 한자락이 되어 가슴에 내리고 있었다.

 

 

 

 

 

아이들의 웃음이 황사먼지를 뚫고 하늘로 하늘로 퍼지고 있었고

어린시절 추억의 시간들도 멀지 진동을 일으키며 퍼지고 있었다.

 

아이들도 교실로 들어가고 적막해진 운동장...

 

버스시간이 다 되어 훌훌 털고 다시 지금의 나로 돌아오는 것이 아쉬웠지만

현실의 일상으로 데려다 줄 버스는 딱 시간맞춰 들어왔다.

 

산다는 건 딱 맞춤인 것이다.

빗겨갈수도 있겠지만 정해진 선을 따라 잘 가는 것도 불행을 자초하지 않는 것 같다.

문득 돌아보는 시간도 필요하겠지만....

 

남해읍으로 돌아오는 버스 2400원..

금산입구에서 탔던 그 버스였다.

 

남해에 도착을 하니 마산 가는 버스가 막 출발을 하려고 했다

어찌 오늘은 이렇게 딱딱 잘 맞는지...2시55분 발 버스를 잡아타고

2시간도 걸리지 않고 마산에 도착

또 당일치기 여행은 끝이 났다.

 

추억도 다시 빼다지 속으로 집어 넣고...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