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여사의 제4의 활동/추억의 빼다지

아 창피 100단 스타킹 빵꾸 난 그날

하늘위땅 2012. 8. 30. 09:04

지금까지 살면서 제일 창피했던 기억 하나.


마산에서 창원 중앙동 (지금 대우빌딩)으로 출퇴근을 할 때였다.

그날도 어김없이 회산다리 횡단보도에서 마주오는 비누냄새 폴폴 날리며 

바바리코트를 멋스럽게 소화해낸 그남자에게 눈길을 빼앗기고


'저사람 왜 저리 잘생겼노? 그리고 이 비누냄새 이건 도대체 어쩌자고 아침부터..'


이럼서 확 먼저 디밀어볼까 어쩔까 생각을 몇날 몇일을 하는거니!!


연신 고개를 돌려 길을 건너 횡하니 지 길가는 일명 비누향기그남자를 눈으로 쫓았다

주변 출근길 여자들 죄다 ㅡ.ㅡ;;;


'내일은 꼭 누구인지 밝혀내리라...!'


혼자 벼라별 생각을 다하는 중에 일터로 가는 직행버스가 왔다.

역시나 만원.

어쩔수 없이 이리저리 낑겨서 겨우 맨 뒤쪽으로 갔는데 이런 횡재가!

동갑내기 입행동기 한넘이


"미야!"


반갑게 미소를 짓는다

(이 녀석이 우리집 담을 넘었던 그 자식 - 모르면 블로그에 가서 제 글을 찾아보세요)


"으...응....철아 안녕!"


(키도 크고 덩치도 있고 남자답게 생겼고 지금 생각하니 나쁘지 않은데 

왜 그땐 그 녀석이 날 좋아하는 것이 그리 싫었을까 참으로 궁금하네...)


큰 키를 쑥 일어키며 니 올줄 알고 자리 잡아 놓았다는 듯 불쑥 일어서서 자리를 내준다

뭐 쫌 미안하기는 하지만 작고 쪼매난 내가 만원버스에서 서서 부대끼며 

창원 중앙동까지 간다는 건 힘들긴 하지..


그녀석의 자리에 앉아 친한척 그 녀석과 이런저런 이야기 꽃을 피우는 가운데 

버스안의 분위기는 선남선녀(?)들로 아주 괜찮은 출근길을 연출 했다.

(그 출근 버스안에서 맺어진 인연도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드디어 내가 내릴 차례.

근처에 직장이 있는 육촌 동생도 내리고 동기들도 우르르 내리고 

맨 뒤에 앉았던 나도 그 녀석과 함께 내리기 시작했다.


폴짝!


뒤에서 잡아주는 그 녀석의 손길을 가벼이 뿌리치고 통통통 뛰어서 출근을 서두르는 그 순간.....


왜 내 눈앞에 보도블럭이 있냐고!!!


아뿔싸 내가 넘어졌구나.

슬쩍 고개를 들어 뒤로 보니 입을 떡 벌리고 선 그 녀석과 육촌 동생, 

많은 근처 직장인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쏟아짐을 느꼈다.


'옴마야 우짜노 이기 무신꼴이고.'


그냥 내처 엎드려누워 있고 싶었으나 빨딱 일어나 씨익 한번 웃고 쏜살같이 내 달려 사무실로 뛰었다.


"미야! 미야!.......머시라거시라..."


그 녀석이 뭐라하는 소리는 들리지도 않고


'짜슥이 머라카노 창피해 죽겠는데 ...'


무사히 사무실에 들어와 안심을 하고 전신거울을 보는 순간 오마이가뜨!!!

꺼먼 수타킹은 쫘악~ 긁혀서 구멍이 펑 났고 무릎은 까지고 피나고 흙 묻고 꼴이 장난이 아니였다.


'옴마야 세사나 이런 꼴을 하고 뛰 온기가 내가 우짜노 창피해서 다 봤을낀데 동생가시나도 봤을낀데 

온 동네까정 소문이 나긋네 하이고 참말로 우짜노 '


구멍난 까만 스타킹 그것보다 더 큰 구멍이 난 내 머리

당장 내일 아침 출근길이 걱정일뿐..


그 뒤 그 출근시간을 피하려 무던히 애를 썼지만 

그 버스를 놓치면 지각을 하는지라 다시 또 그 버스 305번을 탈 수 밖에 없었다.


그 사건으로 비누향기그남자는 깡그리 잊고 있었고 한참의 시간이 흐른뒤 

출근 길 그 남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뿐.


도대체 그 남자는 누구였을까?




쪼깬한 너거들도 우습나?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