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지로 변한 안동 하회마을의 실망감을 또 느끼면 어쩌나라는 맘이 많이 있어서였다고 말하고 싶은데
실은 그것만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경주 양동마을을 이제서야 가보게 되다니.
오래전 다녀온 사람들의 입을 통해 들은바도 그렇고 자차아닌 대중교통으로 휙 다녀오기엔 무리가 가는
코스라 싶어 잊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소박한 일상속의 작은 여행을 꾸준히 다니다 보니 가고자 하는 곳에 대한 사전 공부는 필수라는 사실을
깨닫고 본격적인 실천을 하게 된지 겨우 한해정도.
공부라는 것이 참 골치 아프고 외워야하다는 강박이 괴로워 대부분의 소박한 일상 여행은 그냥 많이
걷다 오자라는 모토를 내려놓지 못했다. 그럼에도 뭔가 아쉽고 부족하고 처음엔 많이 걷다 온 것이
마냥 대견하기만 했는데 이제는 뭔가 채우고 와야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않나하는 욕심이 슬 일어나는 것이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다시 읽고 메모하기, 남의 글 잘 읽고 필요한 부분 기억하기 등을 하다가 우연찮게
만나게 된 것이 '이용재' 인문학적 건축이야기 시리즈.
딸과 함께 어쩌고저쩌고 시리즈였다.
어라 이런 책도 있었네 왜 몰랐지?
(니가 책을 다 아냐! 모르는게 당연하지 ㅡ.ㅡ;;)
아주 불친절한 그 분의 필력
놀랍다 놀라워
이런 문체로도 책을 낸다
딱 내 스타일!!!
이용재의 궁극의 문화기행중에서
조선 제 7대 왕 세조가 북방주민들을 홀대 한다. 열 받은 이시애는 함경도 군사령관 강효문을 살해하고 반란. 손 소는 종사관으로 토벌군 참전. 진압. 이시애 사형. 세조는 반란진압에 공을 세운 44명을 3등으로 나누어 땅 하사(下賜 임금이 신하에게 물건을 줌). 손 소는 2등 적개공신(敵愾功臣 적을 섬멸하는 데 공을 세운 신하). 세조가 손 소에게 물었다.
“자네 본관이 어딘가?”
“경주이옵니다.”
“그래! 그럼 신라를 건국한 그 손 씨의 자손이냐?”
“그러하옵니다.”
“니 소원이 뭐냐?”
“계천이 흐르는 설창산 아래 양동마을에 저희 집안이 모여 사는 겁니다.”
“그렇게 해라.”
그래 양동마을은 경주 손 씨의 집성촌이 된다. 손소에게는 계천군이란 칭호가 봉군되고.
“아빠, 봉군封君이 뭐야?”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신하에게 내리는 최고의 품계.”
“왜, 군 앞에 계천이 붙은 거야.”
“양동마을 앞으로 흐르는 실개천의 이름이 계천이었걸랑.”
“양동良洞은 뭔 뜻이야?”
“어진 선비들이 사는 마을”
이런 스타일로 책이 쓰여져 있다는 것!
관가정, 향단, 서백당, 무첨당,(위좌부터 시계방향)
어쨌던 이용재님의 책을 읽고 양동마을의 건축에 대한 호기심은 쑥쑥 자라나기 시작했는데 그 책속에서 알게 된 또 한분의
책이 본격적으로 발동을 걸었다. 이용재님의 책보다 먼저 나온 책인데 천재라고 이름이 났던 분이라는데(난 모름 ).
아! 이 책이 또 사람을 감동시킨다. 마구마구 용솟음치게 만드는 것이 궁디를 근질근질 간지르는 것이다.
김봉렬의 한국건축이야기 1,2,3 이 시리즈도 건축계에선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유명한 책이라고 했다
(난 건축관계자가 아니니까 뭐 히히)
건축역사 그리고 그 속에 얽힌 여러이야기 등은 그런 것에 목말라했던 내게는 단비처럼 촉촉하게 젖어왔다.
'그래 가자 날도 선선한데 '
맘을 먹고 나니 모든 정보를 안군데 모아야했다.
차편 그리고 양동마을에 대한 정보까지.
다시 메모하고 한번 더 읽고 기억하고 그곳에 갔을때 혹시 놓치고 살피지 않는 부분이 있을까 밥 늦게까지
테레비를 보고도 쉽게 잠들지 못하고 설레는 맘으로 정보 습득에 열을 올렸다.
마산 -> 경주 -> 양동마을 -> 경주 -> 마산
경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오른쪽편에 있는 버스정류장에서 안강쪽으로 가는 버스를 타면 다 양동마을 근처까지 간다고 한다
200번대 버스
203번 버스는 양동마을 안까지 친철하게 들어가므로 이 버스를 타도록.
신경주역에서 출발한 버스는 경주시외버스터미널에 9시05분, 10시 30분 도착
외국인 댓명과 함께 이 버스에 올랐다.
배낭여행을 하는 외국인들이 물어서 "타 ! Go!" 를 외치고 버스에 올랐다.
오늘 외국인들 안내까지 해야 되는 거 아닐까 크흐흫 좋구로..
버스에서 내리니 책속에서만 봐왔던 양동마을이 눈앞에 쫘악!
오메 조쿠로!!
관가정이제 저것이?
옆에 있던 외국관광객 동그랗게 눈을 떠 리얼리! 하는 표정이다
"쩌것이 '관가정' 오케이!"
"yes"
스리슬쩍 시선을 옆으로 돌리니(파노라마로 찍을 걸 ) 그 유명한 진짜로 궁금한 '향단'이 아닌가?
병아리 들이 쫑쫑쫑 많이도 왔다.
양동마을이 시끌벅적한다
수학여행온 얼라들까지 합세를 해서 동네가 죄다 알록달록이다.
"쩌짝은 '향단' 오케이"
"얍! 햐~ㅇ 당"
"노 향단!"
"예 향!단!"
아 힘드러 나 영어 몬해요 그리 오래 영어를 배웠어도 말이지 이거 들리지도 않고 말도 안되
이거 문제야 문제!!
그러나 이날 유림여사는 꿋꿋하게 우리말과 갱상도지역말을 서까서 아주 잘 해 냈다는 후문이 껄껄껄..
이 두장의 사진을 보여주며 한국의 가을이 이렇게 이뻐 이뻐
감탄하니 사진을 보고 손구락 치켜 세우는 어쩔수 없이 일행이 된 그들
이런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겠지.
한국적인 아름다움이란 거..느꼈을까?
온 마을을 점령한 병아리들 관가정까지 침투를 하고 있다.
윽 이런 어서 가야지
병아리들이 정신 사납게 하기 전에.
아이고 약간 경사길에 땀이 질질 난다
가을인데 날씨가 왜 이런겨?
햇빛이 장난이 아니여
땀도 안흘리는 일행들(?)
니네들은 뭐니? ㅠㅠ
드디어 1차로 관가정 도착
감개무량 눈물이 핑 돌 지경
나으 이런 모습에 뜨아한 일행들(?)
너희들은 모른다 이 설렘을 아흐!
이시애의 난을 진압한 2등 적개공신인 손소의 아들 손중돈이 분가를 하면서 지은 집
손중돈은 중종이 청백리를 하사받은 사람(조선의 청백리는 219명이라고 합니다)
양동마을 입구에 떠억허니 자리함
곡식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듯 자손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는 집 이라는 뜻(이용재님의 책에서 알게 됨)
임진왜란은 한국건축사의 가장 큰 분기점 중 하나라고 한다. 7년의 전쟁으로 많은 건축물이 불타 없어졌고 그 후 새로운
건축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전국에 세워졌는데 여러가지 변화가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현존하는 임진왜란 이전의
살림집은 현재 10여채 정도가 남았는데 그 중 4채가 양동마을에 있다는 사실!
서백당, 무첨당, 관가정, 향단
오늘 중점적으로 둘러볼 건축물들입니다.
그중에서 관가정
오래된 건축인데 이렇듯 무심하게 세월을 이겨내고 여전히 그렇게 서 있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같이 온 일행들에게 영어로 설명이 안되는 것들이라 그네들이 가져온 관광책자를 잘 읽어보라 말하고
우리말도 또 씨부리기 시작.
손중돈 .... 곡식들이 자라는 ...그림을 그려가며,,,
못 알아무도 상관엄쓰!
내가 아는 바른 메모지를 봐가며 열심히 구슬땀 흘리면 말했다.
(관광안내소에 친절한 안내원이 있다는 사실을 느까서야 알았음 아 창피 십팔단)
양동마을은 어진선비가 사는 마을이란 뜻
언덕이 중첩되는 물(勿)자형 명당이란다. 임신한 개가 새낄르 낳는 형상으로 인물이 많이 나올 명당이라고 함.
병아리들과 함께 온 병아리선생님이 사진을 열심히 찍어주고 계심
과연 이 병아리들은 여기 왜 온 걸까?
병아리 샘은 어떤 이야기를 해 줬을까 너무 궁금했음.
물어보고 싶었으니 같이 온 일행들도 있고 병아리샘 민망할까봐 그냥 넘김
아~ 이 오지랖아!!
그래도 엄청 궁금함
나도 어릴적엔 암 것도 모르고 다녔다는 사실이 문득 떠오름.
굳게 닫혀 있는 내부를 볼 수 있는 문
겉을 뱅뱅 돌고 또 돌고...
대충 짐작으로 관가정에서 보일 경치도 보고..
그러다 나무 틈 사이로 보이는 내부 모습을 결국 이렇게 찍었다.
뭔가 행사가 있는 듯 한데..
-나중에 서백당에서 만난 동네 열쇠를 가진 분에게 들었더니 오후에 아이들 체험활동이 있어 문을 열어 준다고 했다-
도대체 몇바퀴를 도는지 모르겠다
오래된 나무가 주는 느낌이 발을 잡는 건지 보이지 않은 내부에 대한 궁금증이 잡는 건지
멀리서 보고 가까이서 보고 요래보고 조래보고
아~ 증~~말 궁금하다.
어느새 사라진 병아리들
병아리샘 뒤를 쫑쫑 따라 갔겠지
담너머 슬쩍 사당까지 훔쳐보니 내가 볼려고 해도 맘대로 볼 수 없는 곳이구나 단념을 하기에 이르렀다.
'기회가 되면 꼭 볼 수 있을거야 암만'
관가정 보물 제 422호
관가정 평면도는 http://www.culture.go.kr/art/knowledge/directoryView_sum.jsp?ar_vvm_cd_seq=912 여기서 빌려왔어요
내부가 너무 궁금하여 평면도를 보면서 상상을 해봅니다.
(이 사진이 잘못 올려진 거라면 연락을 주세요 바로 내려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 옛날에는 장가를 간다라고 표현을 한 것은 처가에 들어가 산다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처가에 들어가 처가의 재산을 상속 받고 살았던 세상이였다는 거지.
손소도 처가인 양동마을로 장가를 들어와 뿌리를 내리고 살았다는 것.
여자에게도 상속 등 사회적 지위를 인정했다는 것이 재미있음.
그러므로 양동마을도 장기를 들어온 남자들로 인해 씨족마을의 성씨가 몇번 바뀐거라는 사실도 함께
(김봉렬의 한국건축이야기에서 다시금 알게 된 사실임)
다음에 이어질 향단은 회재 이언적이 동생에게 지어준 집으로 이 관가정에 대치해 이씨가문을 대표한 건물로 지었다는 사실
양동마을의 특징적인 건축들이 손씨와 이씨의 대립상황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점도 알고 보면 더 재미있을 듯 함,
이것도 이용재님과 김봉렬님의 책을 통해서 알게 된 사실임.
넘 길어져서 향단은 다음 포스트에 이어집니다.
아~ 너무 재미나지 않나요?
버스타고 양동마을 가기
*경주시외버스터미널 도착이라면 -
터미널에서 나와 오른쪽 편에 있는 버스정류장에서 안강방면 버스를 탄다
200번대는 거의 대부분 양동마을 입구까지 감
203번 버스는 양동마을안에 까지 들어감
(신경주역에서 출발 시외버스터미널, 경주역을 거쳐갑니다)
마지막에 양동마을 버스시간표는 경주로 돌아오는 시간입니다.
*당일치기도 창원에서도 충분히 다녀올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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