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여사의 제3의 활동/아름다운 내나라 여행

지리산 둘레길 위에서 나를 찾다 - 지리산 둘레길 4구간 금계 동강

하늘위땅 2012. 11. 8. 10:40

쉬는 날이다.

평일 남들은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시간 부스럭거리면 배낭을 꾸린다

간단하지만 작은 배낭이 꽉 찼다.

어디를 가볼까 잠시 망설이다 바로 마산시외버스터미널로 내달린다.

이미 몇번을 가보아 길눈이 훤하니 막힘이 없다.

 

딱히 어디가 아프다는 병명도 없이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던 40대 초반

 

"늙어간다는 걸 꽤 심하게 앓는구나"

 

주변 사람들은 노화현상이라고 했다

몸도 맘도 너무나 무기력해져서 약도 없고 방법도 없어 마냥 꼬꾸라져 있을때  만났다

그래고 걸었다.

 

봄부터 시작했던 걷기가 여름 가을을 넘기고 겨울도 보내고 다시 또 봄과 여름을 지나고 다시 가을

거꾸로 걸었던 지리산 둘레길 금계 - 동강 구간에 길 위에 섰다.

 


 

 

가을 걷이가 끝난 나락이 뜨거워진 아스팔트 길 위에 누워 신나게 사우나를 즐기고 있었다.

 

"야물게 잘 말라야 우리 어머니들 맘이 행복해진다 잘 마르거라"

 

아무도 없는 길 위에서 드러누운 벼나락에게 말을 걸다니.

길은 이렇다.

무엇과도 친구가 되게 만드는 마술을 부린다

여러명 같이 길위에 서도 마찬가지다.

 






낯선 길위에서 낯설지 않은 풍경을 마주하면 한순간 추억의 상자를 열고 들어가버리는 신기한 경험을 하기도 한다.

외갓집 앞마당에 서 있었던 커다란 감나무

빨갛게 익어가는 그 감이 홍시가 되기를 기다려 툭 떨어진 감을 아침 일찍 일어나 주워서 달게 맛나게 먹었던 그 시간속으로.

 

그런데 저렇게 높게 달린 감은 어쩌나?

 

 

 


 

 

의중마을 지나 한차례 숲길을 지나고 잘 만들어진 포장길로 올라서면 약간의 불편함에 나도 모르게 '아이' 소리를 내지만

흙길만 걷겠다는 건 혼자만의 욕심인지도 모르다 위안하며 확 터진 시야에 들어온 모전교가 잠시 포장길의 불편함을 잊게 한다.

 

강이 있고 산이 있고 집이 있고 그리고 그 사이로 길이 있다

 

 


 

세동마을 앞을 지난다

 

 

한참을 터벅터벅 아스팔트 길을 걷는다.

길가의 코스모스, 구절초 혹은 다람쥐가 떨어뜨리고 간 꿀밤이 그 힘든 발바닥을 위로하니 괜찮다.

 

바람이 선선하니 따갑다

챙겨 쓴 모자 아래로 땀이 스물거리며 배어 나온다.

 

"아! 덥다 여름도 아닌데"

 

땀을 훔치며 나무그늘에 잠시 쉬노라니 저절로 노래가 나온다

일상의 어떤 고민도 떠오르지 않는 것이 걷는 즐거움이다.

 


 

 

엄천강을 따라 걷다보면 다랭이 논이 눈을 또 즐겁게 해준다

노랗게 익어 고개를 숙이고 있는 황금빛 벼 

맘의 곳간이 가득 찬 듯 부풀어 오르는 걸 느낄수 있다.

내 논이 아니지만 내가 지은 농사마냥 희안하게도 말이다.

 

"잘 야물어라 벼야!"

 

혼자말이 메아리 되어 엄청강변 다랭이 논위에 햇빛에 섞어 떨어진다.

 

"잘 야물끼라 암"

 

 


 

 

 

운서마을을 지났다.

뒤돌아 보니 걸어온 길이 그림처럼 눈앞에 다가온다

 

"혼자라서 외로웠니?"

 

"아니"

 

온전히 자연에 동화가 되어 걷다보니 내가 누구인지 무엇이 나무고 길이고 하늘인지조차 구분이 되지 않았다

 

내가 걸었고

내 아이가 걸을 것이고

또 그 아이의 아이가 걸을 것이다.

추억이 쌓이고 쌓이면 그것이 역사가 되는 건가?

 

다랭이 논위 황금빛이 바람에 일렁이는 것이 여전히 아른거리는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