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여사의 제4의 활동/추억의 빼다지

카트 머리 싫단 말이야

하늘위땅 2010. 4. 24. 18:37

땀을 뻘뻘 흘리며 동네를 온통 휘젖고 다니면 꼬질한 몰골로 집에 돌아오니

기다리는 건 엄마의 불호령이였다.

국민학교 3~4학년 무렵 이였나 보다.

그리고는 등짝을 철썩 때리시면 커다란 물통 앞으로 데리고 가서는 앉으라하셨다.

눈치만 힐끗 힐끗

할 수없이 땀이 삐질삐질 흐르는 이마를 대강 훔치고 엄마가 내민 의자에 앉았다

 

준비나 한 듯 박수건(보자기)을 내 목에 두르셨다.

 

"머할라꼬?"

 

"가만 있으라켔제!"

 

그리고는 내 땀으로 얼룩 진 머리를 어떤 기계로 자르기 시작했다.

 

"옴마 머하는데 안된다 안카나 내 머리 그라지 마라~"

 

"시끄럽다. 제대로 씻지도 않고 이가 득실거리는데 짧게 치라 고마"

 

"지금 내 머리 자르는기가? 안된다 앙앙"

 

엄마는 동네에 방문 판매를 왔던 외판원에게 할부로 그 바리깡(?)을 산 모양이였다

그시절은 동네로 외판원이 들어와 전을 펼치고 동네 아줌마들을 모아서 설명하고 시연하고

카드에 적고 할부로 각종 가전제품들을 팔았었다.

아마도 외판원의 시연을 보고 1남4녀 우굴거리는 자식새끼들 이쁘게 칼클케 해줄 요량으로 사온 신 것 같은데...

 

윙~ 윙 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 바리깡이 지나가면 여지없이 내 머리카락은 땅바닥으로 내리꽃혔고

닭똥같은 눈물도 바닥으로 떨어졌다

울음 소리는 하늘로 하늘도 높이 올랐고.

 

 

 

 

 

이렇게 근사한 바리깡은 아니였던 것 같은데..

긴머리 자르기, 짧은 부분 고르기, 숱 고르기 등을 할 수 있는 칼 날이 함께 있었던 것으로 기억이 나는 걸 보니

우리 형제자매들은 죄다 그 바리깡 앞에 속수 무책 이였던 것 같은데.

왜 내 기억속엔 내 머리만 짧았던 것 같지?

 

언니는 중학생이라 단발머리를 해서 그랬나?

오빠는?

동생 둘은?

 

왜 나만 머리를 깍였을까?

 

십여분 뒤 목에 두른 박수건을 끌러주시며  씻어라 하시는 엄마가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 없었다.

일단은 따끔거리는 머리카락을 씻어내고 퍼뜩 거울을 찾았다.

 

오마나~ 거울속에는 왠 남자 아이가 있었다.

 

"이기 머꼬 남자가 되었다 아이가 몰라 우짤끼고 친구들이 놀릴낀데 낸 모른다 ..앙앙.."

 

"시꾸랏~"

 

거울을 이리보고 저리 봐도 이건 여자가 아니다

삐쭉삐죽 날카롭게 층이 난 이 머리스타일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머리를 감는데 어찌나 헐빈하게 느껴졌던지...

그래서 또 울었고 다음날 학교 가기 싫다고 앙탈을 부리고 울다가 등짝을 세게 맞고

가기 싫은 발걸음을 학교로 옮겼다.

수업 내내 내 머리만 수근거리는 것 같고

앞에 앉은 이쁜 머리핀과 고무줄로 머리를 묶은 친구가 엄청 부러웠다.

 

종일 우울하게 보내고 밖에서 놀지도 않고 바로 집으로 들어가

또 엄마한테 패악질을 하면 머리 붙여달라고 떼를 써댔다..

덕분에 그날 밤 저녁도 먹지도 못하고 맨발로 집 밖으로 쫓겨나기까지..

 

그때는 분명 울 엄마는 계모일것이라 생각을 했었다.

밖에서 또 떼를 쓰며 울자 빨래 방망이를 들고 멀리 쫓아버리시는 울 엄마.

울면서 동네 골목을 맨 발로 도망다녔다.

 

기억은 거기까지...

그날밤 노숙은 하지 않았을 것인데 그 뒤의 기억이 왜 없을까?

 

그렇게 그 바리깡은 우리집 미용사 노릇을 톡톡히 했었고

그럴때마다 엄마의 강압에 의해 이발을 당하고

하루종일 울고 울고 또 울고...

또 쫓겨나고 밥도 못 얻어 먹고

그렇게 몇일을 왜 물어보지도 않고 엄마 마음대로 내 머리를 그렇게 만들었냐는 항의는 계속 되었지만

항복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엄마는 눈하나 깜짝 안하고 내 항의를 묵살했고 띵깡을 부리면 부릴수록 내 배꼽은 등쪽으로 붙어갔거던...

그 싸움은 중학교 입학을 앞둔 국민학교 6학년에서야

단발머리를 위해 잠시 머리를 기를 수 있는 특권이 주어져 끝이 나게 되었다.

 

그러나...그 단발머리도 잠시 뿐..........

 

다음에 계속 됩니다.

 

두발자유화의 물결속에 버려진 긴머리의 애착편에서 만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