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여사의 제4의 활동/추억의 빼다지

어젯밤 우리집 담을 넘은 도둑이 너였어?

하늘위땅 2010. 10. 9. 10:15

첫 미팅의 기억도 아스라히 기억도 안날즈음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엄마의 소원대로 은행원이 되어 나름 산뜻한

사회생활이 시작되었다. 공채2기로(그 전엔 거의 대부분 소개로 은행에 취직을 했다고 하니) 11박 12일의 여자끼리

합숙연수를 끝내고 대망의 첫 직장생활은 설레임으로 출발을 했다.

정신없는 은행일을 배우면서 입행동기들과의 잦은 만남은 활력을 주었고(왜냐면 남자들이 반이상이였기 때문에 하하하)

늦은 퇴근시간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 그 시절엔 업무량도 많았고 전산화 작업이 안된 관계로 일일이 수기로 일을 했었다)

입행동기들은 밤 문화 섭렵에 재미를 붙였던 것 같았다.

 

 

 

 

후배와 은행 상품 홍보 나가서 찍은 사진 치마를 보니 완전 촌시럽지요 ^^

 

 

 

 

그날은 은행 업무가 너무 늦게 끝나 일찍 마친 동기들의 모임에 참석을 하지 못하고 파김치가 되어 귀가를 해 일찍 잠이 들었다.

새벽무렵 얼핏 무슨 소리를 들은 것 같아 몸을 뒤쳑였지만 한번 자면 절대 깨지 앉은 잠버릇 때문에 밤의 소란은 알수가 없었다.

아침에 깨어보니 난리가 난 것이다.

밤에 도둑이 들었는데 훔쳐간 물건은 없고 단추 하나만 남기고 도망갔다는 것이다.

창문을 여는 소리에 잠이 깬 엄마가 누꼬? 하는 소리에 도둑(?)은 줄행랑을 쳤다는 것이다.

 

아침을 먹으며 다들 후덜덜 딸들만 자고 있던 방에 도둑이 또 들면 어쩌나 겁을 잔뜩 집어먹고 문 단속 잘하자고 서로 다짐을

하였다. 그러나 그런 일은 두번 다시 일어나지 않았고 그냥 잊고 지날즈음 같은 지점에 근무하는 동기생에게 충격적인 말을

듣게 된 것이다.

 

그 밤의 소동은 다른 지점에 근무하는 남자 동기생이 벌인 짓이라는 것이다.

 

"동기 모임에서 처음 인사하고 별루 친한 녀석도 아닌데 왜 우리집 담을 넘었지?"

 

" 니 몰랐나? A 가 니 처음 본 뒤 완전 빠져서 니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

 

"머라꼬 A가 내를 좋아한다꼬? 누가 그러더노 본인이 직접 말했나?" 

 

"그래 니 참말로 몰랐나 그 녀석 눈빛만 봐도 알낀데 니도 참 무디다 동기생들 중 그거 모르는 사람도 있었나 ㅎ"

 

이 무신 귀신씨나락 까묵는 소린지 눈에 넣어 본적도 없는 녀석이 날 좋아한단다 그래서 그 마음을 참지 못해

우리집 담을 넘어 자고 있는 날 덥치려 했단다~~ 오~ 마이 가뜨!

 

키도 큰데다 덩치까지 있는 녀석인데 조금 어눌해 뵈는 것이 내 취향은(머 딱히 취향이 있었던 것도 아닌였던 것 같은데)

아닌데 지가 뭔데 날 좋아해 싶어서 그 사건이후 따로 만나지는 못하고(좀 어색하고 무서워) 동기생들과 모임 자리를

통해 만나게 되었다.

 

그제서야 그 녀석을 똑바로 살펴보게 되었고 내 앞에서 어쩔줄 모르고 허둥지둥 안절부절 눈조차 마주치지 못하는게 아닌가?

아뿔싸 왜 몰랐을까? 남들은 다 알고 있었던 사실을...

괜시리 그 자리가 좌불안석 나 마저 불편한 자리가 되어 버렸다.

다른 동기생들은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우리 두사람의 하는 모양새를 힐끔 힐끔 지켜보고 있었고

넘들의 주목이 싫어서 그 놀기 좋아하는 자리도 일찍 나와버렸다.

 

A 그 녀석은 통영 출신으로 꽤나 모범생이였다고 했다. 융통성 없어 뵈는 굵고 낮은 목소리가 별루여서 더 눈길을 주지 않았던 건지도 모르겠는데 A 를 좋아했던 여학생까지 떨어뜨리고 날 쫓아다녔단다.

어느날 날 만나자고 해 부담스러워 밍기적거리다 뭔가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되겠다 싶어 그 자리에 나갔더니

좋아했던 여학생과 나눈 연애편지를 한통 가져와서는 내 앞에서 다 찢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 오맛 ! 니 머하는데?"

 

"사나이가 두 마음이면 안되는거 아이가 지난 마음도 미안하니까 다 지운다 그리고 니만 사랑할끼다 "

 

헉! 겨우 스무살 나이에 사랑이라니 어찌 저리 느끼한 멘트를 사정없이 날리주는지..

그 느끼함이 더 싫었다는 거 A는 몰랐을 것이다.

그렇게 그 녀석은 한동안 날 쫓아다니며 구애을 했었다.

그 끝이 별안간 이루어진 내 결혼으로 난 잊어버렸는데 A 는 3년을 슬퍼하며 눈물로 보내다(지말이)

옆에서 위로를 해 주던 후배랑 결혼을 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후 15년의 세월이 흐른 뒤 정말 우연히 길에서 마주친 A

그 녀석은 살짝 배가 나오기 시작한 중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목소리는 여전히 느끼하였고 날 보는 눈빛은 여전히 반짝였다.

 

"야~ A ! 그때 우리집 담을 넘은 도둑이 너였담서!"

 

"그때 성공했더라면 니는 내캉 부부가 되어 있었을낀데 그날 내가 술이 좀 많이 취해서

제어가 안되가꼬 실패를 했다아이가 하하하"

 

"으이구 이 화상아 그러게 맨 정신으로 담을 넘지 그랬냐 하하하하"

 

" 갱미야 지금이라도 보니 좋다. 니는 여전히 이쁘고 귀엽네 내가 니를 얼마나 사랑했던가 새삼 자랑스럽다 "

 

"머라꼬 푸하하하 너거 마눌한테 죽는다 입 조심해라이!"

 

 

 

그때 내 마음이 조금이라도 그 녀석에게 기울어졌더라면 세월이 흐른 뒤 만난 A가 아쉬웠을텐데

짝사랑으로 끝난 녀석의 사랑앞에 난 친구로 다가갈수 있었다.

 

그 녀석은 지금은 또 어떤 모습일지 괜시리 궁금해지는 가을 어느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