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여사의 제4의 활동/우리동네 어디까지 가봤니

[유장근교수의 도시탐방대] 17차 진전일대 탐방

하늘위땅 2011. 5. 15. 15:17

전날 날씨가 꾸무리하고 살짝 떨어졌던 빗방울에 한 걱정이 기우였다.

탐방일은 너무나 화창하면서 뜨거운 태양이 이글거리며 갈테면 가봐라 아주 심술을 부리는 듯 몇걸음 걷지 않아도

땀이 은근하게 나와서 이거 덥겠는 걸 가야되나 말아야 되나 잠시 잠깐 망설임을 가슴에 품었었다.

 

하지만 너무 오랜만에 가는 탐방길인데다 몇일 전 뵌 교수님(신문에 난 기사를 보시고 오셨던)께 토욜 뵙겠노라 약속을

한 것도 있고 그냥 집에서 뒹굴거리나 밖에서 땀 좀 빼난 시간은 똑같이 지나갈텐데 싶어 몸을 조금 혹사하는 쪽으로

선택을 하고 후배 류창현군과 만나기로 한 산복도로 노인병원 앞으로 나서려는 순간 거의 다왔다는 전화다.

 

이크 서둘러 노인병원 앞으로 달려야 했다.

덥고 땀이 났지만 무거운 몸을 재빠르게 보이게끔 달렸다.

아뿔싸 건널목 신호등에 발목이 잡혔다.

길 건너 보니 창현씨가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땀 좀 흘리고 숨 좀 찬 뒤 드디어 차에 오르고 다른 일행들을 만나기 위해 산복도로를 달렸다.

 

2시에 모이기로 한 대정마을 입구로 속속 대원들이 도착을 했고 하도 오랜만에 오다보니 대부분 처음 보는 사람들이라

약간 어색했지만 안그런척 태연한 모습을 유지하려 애를 썼다(왜그랬을까? ㅎ)

 

 

 

탐방대장 유장근교수님

 

 

 

드디어 유장근 교수님의 대략적인 소개말과 함께 본격적인 탐방에 나섰다.

이번 탐방은 진전 일대 지역의 수많은 열녀,효부,효자각과 재실 그리고 화려한 무덤등을 돌아보고 유독 왜 이 지역에 저런 것들이

많은 지에 대해 알아보면서 역사의 아픔이 남아 있는 마을을 돌아보는 일정이였다.

 

대정마을 입구에서 여양리쪽으로 대원들 모두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뜨거운 5월의 태양은 이글이글거리며 우리들은 발걸음을 사정없이 막으려 하고 있었고 양파밭 땡볕아래 일하시는 어르신들의 모습마저도

우리들의 발걸음을 다소 무겁게 하는 듯 했지만....

 

 

 

 

양파수확에 여념이 없으신  어머님들                   초록이 짙은 마늘밭                    수확이 끝난 양파 밭

 

대정마을 일대가 양파 재배지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았다

이날 처음으로 알고 처음으로 본 것들이 상당히 많은 날이였다.

 

양파밭을 지나니 바로 눈에 띄는 열부각 길가에 서 있어 그런가 비석 하나 들어 있는 전각이 생각보다 화려하다.

 

 

 

입구 문은 자그마한데 위에 앉혀진 지붕은 화려하다 못해 언발라스한 느낌을 주면서 화려했다.

열부각이라는데 이렇듯 화려하게 치장을 한 이유는 뭘까?

1932년 건립

 

화려한 건축양식에 대해 전문가들의 견해를 듣고 궁금했던 일전에 봤던 무등산 증심사 오백전과 비로전의 건축양식에 대한

궁금증도 약간 해소를 했다.

 

 

 

무등산 증심사의 비로전 지붕                                            증심사 오백전의 지붕아래 서까래 모습

 

 

여러의견을 모아서 머릿속에 뒤죽박죽 대충 넣어두고 다시 뜨거운 길을 나섰다.

이런 시골마을을 걷다 보면 대부분 만나게 되는 것중에 하나가 오래된 건물 혹은 물건인데

그것들이 주는 추억의 되새김은 잠시잠깐이나마 행복의 파도를 타게 만들기도 해서 본래 탐방의 목적보다는

더 빠르게 장소로의 감정 이입이 되기도 한다.

 

 

 

 

 

 

탐방길에 발견한 오래된 우체국 건물.

폐허가 되어 을씨년스럽게 길가에 방치가 되어 있었는데 탐방대원들은 입을 모아 탄식을 뱉었다.

 

아깝다 더 스러지기 전에 손을 봐서 보존을 했으면 좋겠다 등등

 

안타깝기는 모두가 마찬가지인 모양.

저 건물이 있었던 시대를 살아온 사람이기도 아니기도 하겠지만,

과거의 기억을 되살릴수 있고,

 세대간 단절된 그 어떤 것을 이어줄수도 있는 훌륭한 연결고리가 될 수도 있는 저런 건물들이 버리지는 것에 대한 마음은 비슷했다.

 

 

 

 

박물관에서나 봄 직한 70년대 상징 굴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저 굴뚝을 보면서 경험치가 비슷한 연배들은 굴뚝에 얽힌 추억을 꺼집어 놓느라 아주 신났고

영 딴세상 이야기를 듣는 듯 관심을 보이지 않는 다소 젊은 사람들은 지루했을까?

 

연탄을 금방 갈고 난뒤 연탄까스가 새어 나올 것 같지 않은가..

가스중독의 경험이 불현 듯 떠오르기도..

 

 

 

 

 

곰팡이 까맣게 앉은 보르꾸(사투리로 표현하는 것이 한계가 있습니다 벽돌이라는 뜻) 위 3알의 양파 그리고 양철 대문의

벗겨진 녹색 칠이 과거와 현재의 공존을 말해주는 듯...

그리고 황토돌담이 역시 과거로 휙~ 데려다 준다.

 

 

 

대원들이 걸어서 도착한 곳은 아주 잘 만들어진 밀성박씨 문중묘다.

원형과 방형이 호석과 비 그리고 검은 추도석이 다소화려하게 치장이 되었다.

길가에 있어 보여주기 위해 꾸민 것이 아닐까라는 설명을 하신다.

하긴 보여주기 위한 거라지만 후손이 좋은 형편을 가지지 않았다면 결코 저렇듯 묘를 꾸미지 못하지 않겠나 싶었다.

후손들이 자신의 성공을 조상덕이라 여겨 꾸며준 것일수도 있을 것이고...

 

작년 파묘하여 화장해 버린 울 아버지 생각에 잠시 울컥했다.

 

 http://blog.daum.net/ahssk/957 울 아버지 이야기

 

 

 

 과거속에 잠시 풍덩 빠져 있는 사이 정말 깜짝 놀랄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오~ 이런 아름다운 곳이 이렇게 있었다니..

왜 몰랐을꼬?

영남알프스 자락만 좋은 줄 알았는데 이런 멋진 곳이 있었다니..

 

혼자 연신 감탄을 하고 탄복을 하고 맑은 물에 반하고 시원한 그늘에 취하고

나무에 달리 그네줄에 완전 뻑이 갔다.

 

 

 

 

맑은 물이 흐르는 이곳을 뭐라고 부르나?

시원한 나무 그늘이 이어진 이곳이 바로 천국이로다.

 

깊은 물에는 물고기가 노닐고..

시원한 바람과 함께 물소리는 노래보다 아름다이 가슴으로 파고 들었다.

 

(고사천이라고 하네요)

 

 

 

 

 

 

 

건너편에 소풍을 나온 가족들이 점심을 먹는 모습도 보였고...

길 건너 반듯한 재실마저도 계곡의 물 소리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오른쪽은 청송심씨 죽포정 - 명칭은 정자인데 재실의 기능을 하는 것 같다는 설명을 하심

 

 

 

 

길가 곳곳에 서 있는 비석들도 나름이 이야기가 숨어있었다.

고향마을에 전기를 설치해 주었다고 세운 공덕비(왼쪽)와 구 여항초등학교에 세워진 장학추모비

 

 

 

 

작년 10월 유장근 교수님이 탐방할 당시 구여항초등학교 입구에 서 있었던 효자 정태수 동상을

이번 탐방에서는 볼 수 가 없었다.

 

그 자리엔 나무가 심어져 있어 일행들이 황당하게 쳐다보고만 왔다.

어찌된 사연일까?

 

초록의 5월 주변은 온통 눈이 시원해지는 숲

하늘은 어릴적 제일 먼저 칠하던 그 하늘빛깔로 있는 날이였다.

 

 

 

 

여항우체국 건물의 아쉬움이 채 없어지기도 전에 다시 만난 오래된 정미소 건물이 내려앉을 듯 위태위태하게

우리앞에 나타났다.

 

 

 

 

 

내부를 둘러보니 아직 기계 설비가 그대로 남아 있어 통통통 시끄러운 소리가 가득하고 미강이 날렸던 기억속의

정미소를 떠올리기엔 부족함이 없어보였다.

금방이라도 돌아갈 듯한 모습이랄까?

 

함께 했던 대원들 이번에도 이런 건물들을 이렇게 내비두는 것을 안타까이여겼다.

근처 녹색체험마을도 있던데 연계해서 이런 오래된 건물들을 손을 보아 관광 자원으로 함께 이용해도

좋을텐데하는 아쉬움이 여기서도 생겼다.

 

자꾸 길을 돌아보게 되는 탐방이로구나..

 

이름도 특이한 술인방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만나게 된 비석.

 

 

 

1976년 마을에 전기를 가설해 준 박노석씨의 은혜를 기리기 위해 세운 시혜비다.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겠다는 마을주민들의 뜻이랄까..

 

곧 흙탕물이 내려오는 (위에서 공사중인지) 작은 하천을 따라 10여분 골짝으로 들어오니 술인방 마을이다.

 

 

 

마을 입구에서 만나게 된 외양간의 소3마리가 큰 눈으로 많은 사람들의 방문에 깜짝 놀란 듯 쳐다보았다.

새끼를 밴 어미소도 눈에 띄어 조금 조심스러웠다.

 

그늘 한켠에서 마을의 이야기를 듣는 도중 발견한 처음보는 식물

이게 뭔가 유심히 봐도 기억에서 꺼집어 내올 이름과 매치가 되는 것이 없는 찰라

유장근 교수님이 자색 인동초라고 설명을 해주셨다.

 

아! 이거이 인동초구나..

책에서만 소설에서만 만났던 그 인동초..

어느분은 DJ가 생각난다고 했는데 왜? ㅎ

 

술인방 마을은 작은 골의 개울을 사이에 두고 길게 앉은 동네인데 참 척박하기 이를때 없는 곳이였다.

논이며 밭이라고는 없는 곳이였고 그래서 사는 것이 참 팍팍한 동네라는 설명을 듣지 않아도

알수 있는 곳이였다.

더구나 이 마을은 6.25 와 관련된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이며 그로 인한 삶의 질곡이 많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란다.

동네 곳곳에서 확인 할 수 있는 6.25 참전유공자 명패가 어떤 곳인지 담박게 알게 해준다.

 

밀양박씨 씨족마을 술인방 마을에서 본 인동초만큼 강하게 남은 동네였다.

 

 

 

술인방 마을을 내려오면서 다음 목적지를 향해 가는 길이 험난 할 줄은 정말 몰랐다.

먼저 내려가는 박영주 선생의 설명으로 우리나라 소나무도 쳐다보게 되었는데..

오른쪽은 우리나라 소나무의 아름다운 자태를 보여주는 숲이..

 

 

 

 

 

왼쪽은 호밀밭과 개울사이로 활짝 핀 자운영을 보면서 긴 길을 걷기 시작했다.

처음 본 자운영 꽃도 엄청 이뻤다.

호밀밭 이야기에 하하 호호 야릇한 웃음도 들판에 날렸다.

 

그런데 갈 길은 여전히 멀기만 했다.

 

 

 

 

 

 

처음 참가한 젊은 학생 커플들은 씩씩하게 대장님 뒤를 잘 따라 걷는다.

오른쪽 소나무 숲보고 왼쪽 호밀밭과 자운영과 야생화 구경하면서 늘어지는 오후 햇살을 감상할 겨를도 없이

걷기에 바빴다.

 

곧 옥방 마을이 보였고 이게 끝인가 했는데 아니였다.

 

 

 

 

 

 

앞서 가시는 선두 대운들.

옥방샛담길이라는 이쁜 이름이 붙은 길안내 표지판이 다소 지친 발걸음을 가벼이 해주는 듯 했지만.....

 

 

 

 

 

 

탐방대 보물창고 박영주선생의 호기심에 대한 학구적 열의는 누구도 따라갈 수 없었다.

옥방이 마을이 한결 더 가까워졌다.

 

 

 

 

 

 

옥방 마을을 지나 한참을 또 올라 간 곳은 골옥방 계곡 따라 만들어진 두채의 움막별장이였다.

약속된 움박 별장은 주인장이 다쳐 병원에 가버려 결국 밖에서 구경만 하고 다시 걸을 나섰다.

 

 

 

계곡을 따라 길게 앉은 두채의 별장은 드리워진 산그림자에 땀이 금방 식을정도의 쌀쌀한 기운이 감돌았다.

잘 꾸며진 별장 주변이 주인장들의 수고와 노력을 볼 수 있었다.

계속 물 흐르는 소리가 아주 청명했다.

 

 

 

 

 

움박별장앞에서 다들 지쳐 퍼질러 앉아 휴식을 취하며 물을 마시거나 지친 다리를 쉬는 데 나이어린 대원인

고등학교 1학년 강태완 학생이 사루비아 과자를 건넨다.

오~ 이런 사루비아가 이렇게 맛있는 줄 예전엔 미처 몰랐다며 다들 어찌나 달게 먹었는지..

 

마을을 거쳐 가는 길이라 점방이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전혀 볼 수가 없어 내내 물 한모금 안마시고

탐방하기에 열중을 하다보니 5시 30분경 도착한 이곳에서 다들 퍼진 것이다.

물도 마시고 태완이가 나눔해줌 과자 두어조각으로 남은 일정을 마치기 위해 다시 길을 나섰다.

 

 

 

 

스러지는 5월의 태양이 늦은 오후임을 알려주는 듯한데 대원들의 발걸음도 아주 무거워보였다.

너무 긴 아스팔트 길을 걸은 탓인지 골옥방에 도착을 한 뒤 만나게 된 여양재는 참 아이러니한 늬앙스를 풍기며

골옥방 마을 중심에 현충사 같은 자태로 서 있었다.

 

세정그룹 박호순사장의 고향마을이며 여양재도 그 분이 주축이 되어 새로 세운 것이라고 한다.

 

 

 

 

 

골옥방 마을이름에 대한 의견나눔과 이런 꼴짝 마을에 위용을 자랑하는 재실의 존재에 대한 토론으로 늦은 오후는

참 더디게 흘러가고 있었다.

잠시 다른 대원들의 말소리가 멀어지고 하늘을 올려다 보니 달이 보였다.

 

막차(대정까지 다시 걷기에는 시간도 기운도 없어서 75-1번 버스 7시)요량으로 대원들은 움직였고 버스를 타기 위해

도착한 삼거리에서 만난 보호 소나무..

400년대 소나무인데 신선을 태우고 지나가는 호랑이를 맞이했다는 전설이 있는 보호수란다.

자태가 아주 늠름하다.

 

골짝의 밤은 아주 빠르게 내려앉고 있었고 얇은 옷사이로 바람이 꽤나 차갑게 느껴졌다.

 

 

 

 

 

 

버스를 기다리면서 맞은편 재실과 쌍효각과 창효각을 둘러보았아.

오래된 콘크리트 다리를 건너면 바로 재실이 나온다.

 

   

 

자연환경에 맞춰 지어진 옥산재                효에 뛰어난 부부를 기린 썅효각             쌍효각 부부의 효행을 공인받기 위해

                                                                                                                   애쓴 박준규의 노력을 치하한 창효각

 

 

 

 

 

대장님의 설명을 귀담아 듣는 대원들과 건너편에서 농땡이 치며 사진을 찍어대는 불량 대원 ㅎㅎ

노랑미나리 아재비를 찍는 척하며 대원들을 찍었다.

 

버스가 올 시간..다리마저 풀리고 배도 고팠고..

길이 험하거나 힘이 든 것은 아니였는데 굉장히 긴 길을 걸은 듯 다리도 무겁고 풀리고 아팠다.

유장근 대장님은 여전히 쌩쌩하시던데..

어째 더 젊은 대원들은 비실비실이였나?

 

75-1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둔덕마을도 꽤나 깊은 골짝에 앉은 곳이였으니 다음번에 다시 방문을 하고 싶은 곳이였다) 갔다가

대정마을까지 와서 대정마을 돼지주물럭으로 지친 몸을 잠시 위로하고 이번 탐방을 마무리했다.

 

* 대정마을 경유 둔덕마을까지는 75번 76번 (마산발)

75-1(진동환승장 발) 3대의 버스가 운행을 하고 있으니 운행 간격이 넓으므로 잘 알아보고 움직이시길.

땡볕을 걸어야 하지만 걸어서 돌아보는 것도 나름 괜찮은 데이트코스가 되질 않을까 싶었음.

생각보다 볼 거리도 많았고 이야기도 많았던 탐방이였고 마산 근교에 깊은 골짜기 마을이 있고

계곡 물이 콸콸 흐른다는 사실은 굉장히 놀라웠음,

여항산과 갓데미산이 같은 곳을 지칭하는 지는 모르겠는데 6.25와 관련된 이야기를 어릴적 부터 들은 적은 있음

 

*추가 :집에 돌아와 엄마에게 갓데미산과 부재 그리고 외할아버지 6.25 사변 이야기등을 듣느라 12시 넘어서야 잤다는 것.

엄마를 모시고 갔더라면 골옥방과 둔덕마을 부재와 갓데미산의 이야기를 좀 더 생생하게 들을수 있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살짝 들었음

 

 

 

 

파란 하늘에 달 모습이 선명해질 때까지 탐방이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