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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동양학 읽기] 4. 고전의 독해 [중앙일보]

하늘위땅 2011. 6. 18. 09:43

[동양학 읽기] 4. 고전의 독해 [중앙일보]
 
 
고전의 문장들은 글자의 생략과 의미의 압축이 심하다. 이것은 옛사람들이 말을 아끼는 것을 미덕으로 삼고 간결한 표현을 좋아해서 구질구질하게 쓰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말을 소리나는 대로 적을 수 없는 한자라는 문자의 특성이 주는 제약 때문이기도 했다.
 
또 한가지 고려할 사항은 서로 관계가 없어 보이는 여러 문장이 이어서 나올 경우 거기에는 논리 전개상의 연관성이 반드시 있다는 점이다. 도덕경은 대부분의 장이 그러하고 논어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고전 문체의 특징이 가장 잘 나타나는 대표적인 예가 바로 논어의 유명한 첫 구절이다.
 
 
 
논어의 첫 구절은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
' 이고, 두 번째 문장은 '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 이며, 세 번째 구절은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 이다. 일반적인 해석은 잘 아는 바와 같이 '배우고 때로 익히니 즐겁지 아니한가?
 
친구가 멀리서 찾아오니 아니 기쁜가?
 
사람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으니 군자가 아닌가? 이다.
 
*** 세 문장이 하나의 뜻 설명
 
이 구절들은 대단히 함축적인 고전체의 표현이고, 동시에 전후의 구절들이 서로 연결되어 세 개의 문장으로서 하나의 뜻을 설명하고 있는 대표적 모델이다. 논어의 첫 구절에 대한 올바른 해석을 같이 해보는 것으로서 '고전의 독해' 를 시작해 보자.
 
우선 '학이시습지' 의 어조사 '이(而)
' 는 '~하고, ~한다' 는 식으로 앞과 뒤를 동격으로 접속해주는 어조사가 아니다. 그래서 이 문장은 '배우고 때로 익힌다' 고 번역하면 올바른 의미를 살릴 수 없다. '이(而)
' 는 순접과 역접이 모두 가능한 접속사여서 'A而B' 라는 문장이 있을 때, 순접인 경우에는 'A에(도)
B한다' 나 'A에 대하여(도)
B한다' 이다. 역접인 경우는 반대로 'B에(도)
A한다' 나 'B에 대하여(도)
A한다' 가 된다.
 
우리말로 옮기는 경우 목적격을 만들어주는 어조사 '지(之)
' 와 같이 'A를 B한다' 또는 'B를 A한다' 로 옮기는 것이 자연스러운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우리말로 옮길 때의 자연스러움을 택한 결과이지 이때의 'A를' 이나 'B를' 이 문법상 목적어는 아니다.
 
*** '而' 는 동격아닌 선후관계
 
그래서 '학이시습지' 라는 문장은 '배운 것에 대해서 때로 익힌다' 가 된다. 자연스럽게 약간 의역을 하면 '배운 것을 때로 익힌다' 가 된다. 앞의 '학(學)
' 이 뒤의 '습(習)
' 에 선행되는 것이다. 이 순서는 바꿀 수가 없다. '학' 과 '습' 이 동격이라면 '습이시학(習而時學)
' 도 말이 되야 하는데 이것은 성립되지 않는 소리라는 것이다. '이(而)
' 라는 접속사는 반드시 앞뒤의 말에 선후(先後)
관계를 결정하는 것이다. 익히는 무엇은 반드시 이미 배운 것에 대해서이다.
 
'배우고 때로 익힌다' 와 '배운 것을(에 대해서)
때로 익힌다' 가 무어 그리 큰 차이가 있느냐고 말할 지 모르겠으나 이것은 공자의 말뜻이 무엇인가를 결정하는 중대한 차이가 있다.
 
다음 구절 '유붕자원방래' 를 보자. 여기서 공자가 말하고 있는 '친구' 에는 세 가지 뜻이 있다. '유붕(有朋)
' 은 '이미 있는 친구' 이다. 즉 사귄 지 오래된 친구다. 또 먼 곳에 사는 친구(遠)
이며, 자기 발로 찾아온(自來)
친구다. 즉 멀리 사는 옛 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멀리 사는 옛 친구' 는 첫 구절의 '이미 배운 것' 과 대구를 이루고 '때로 익히는 것' 과 '친구가 찾아오는 것' 이 쌍을 이룬다. 공자는 '공부를 하고 배웠던 것을 가끔씩 익히는 것' 을 '멀리 사는 옛 친구가 찾아오는 것' 과 같이 비유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배운 것이 없으면 익히는 즐거움이 있을 수 없고, 친구가 없으면 멀리서 찾아오는 기쁨도 없을 터이다. 이 두 가지를 나란히 비유해서 한 말인데도 2천년이 넘도록 이 구절들의 연결된 의미를 제대로 읽지 못했다.
 
이 두 구절의 연결 관계를 발견할 수 있을 때 가장 논란이 되어 온 세 번 째 구절의 뜻도 알 수가 있게 된다.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 라는 이 구절은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않으니 역시 군자가 아니겠는가?' 라고 읽혀져 왔다. 하지만 여기서의 '인(人)
' 을 남이라는 뜻의 타인(他人)
으로 번역할 근거가 없고, '부지(不知)
' 를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것' 이라고 번역할 어떤 이유도 없다.
 
說.樂.溫 연결의미로 해석
 
'인(人)
' 은 '사람' 이다. '부지(不知)
' 는 '모르는 것(알지 못함)
' 이다. '불온(不온)
' 은 '화내지 않는다' 이다. 그대로 번역하면 '사람이 모르는 것에 화내지 않는다' , 그리고 '그것 역시 군자가 아니겠는가?' 하는 소리다.
 
여기서 '온(溫)
' 은 첫째과 두번째 구절의 '열(說)
' 과 '낙(樂)
' 의 대구이다. 해석을 하면, '공부한 것을 때로 익히는 것이 즐겁지만은 모른다 하여 화를 낼 필요는 없으며, 멀리 사는 친구가 찾아오면 아니 기쁘랴마는 찾아오지 않는다 하여 섭섭해하지 않으니 어찌 군자가 아니랴' 하는 소리다.
 
공부를 하고 익히는 것은 기쁨이지만 사람이 모든 것을 다 배워 알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설사 배우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것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에 화를 내거나 속상해 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배우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되 모르는 것에 화내지 않는 것이 바로 공자가 말하는 '군자' 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 말을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않는다' 고 읽어왔다는 말이다. 만약에 이게 공자의 말뜻이라면 '남이 나를 알아주면 기뻐한다' 는 소리가 되어 버린다. 그런 것이 공자가 말하는 군자란 소린가?
 
그게 아니다. '군자는 공부한 것을 때로 익히는 것을 마치 옛 친구가 갑자기 찾아왔을 때처럼 기뻐해야 하지만(기쁜 일이지만)
사람이 모르는 것이 있다 해도 그것에 화를 내지 않으니 그것 역시 군자가 학문을 대하는 자세이다' 라는 것이 공자 말씀의 본의이다.
 
 
이경숙 <노자를 웃긴 남자>
저자
 
<옥편에 안 나오는 용례 살펴볼 것>
 

'이(而)
' 는 우리말의 '~이 ,~는, ~가' 나 마찬가지로 한문에서 안 쓰이는 문장이 없을 정도로 많이 나오고 그 만큼 중요한 어조사이기 때문에 앞으로 고전의 문장을 감상할 때마다 그 용례를 들어 살펴나갈 것이다.
 
지난 기고에서 고전의 번역은 옥편 한 권만 뒤지면 가능하다고 했는데, '이(而)
' 라는 어조사에 대해 자전(字典)
에 나와 있는 내용으로 고전의 원문 속에서 어떻게 기능하고 있는 지는 알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이런 정도의 사전 지식은 배울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전제되는 말인데, 말 그대로 받아들여서 '옥편 한 권만 갖고 고전을 읽는다는 게 말이 되느냐?' 하고 따지는 독자들이 있다. 하지만 이런 것은 핵심적인 몇 가지만 알면 되는 것이다.
 
이 칼럼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것 중의 한 가지가 고전을 읽는데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이면서도 옥편만 뒤져서는 알 수 없는 몇 가지 부분들에 대해서이다.
 

 

이경숙 <노자를 웃긴 남자>
저자

출처 : 벽운공
글쓴이 : 겨자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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