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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동양학 읽기] 5. 고전의 독해 (2) [중앙일보]

하늘위땅 2011. 6. 18. 09:54

[동양학 읽기] 5. 고전의 독해 (2) [중앙일보]
 
 
고전을 번역할 때에 가장 주의해야 할 글자가 어조사 '이(而)
' 와 '지(之)
' 두 가지다. 대부분의 오역이나 악역은 이들의 정확한 용법과 역할을 소홀히 한 데서 비롯된다.
 
그 중에서도 '이(而)
' 라는 어조사는 우리말의 '~이, ~가, ~는' 과 같이 한문에서 안 쓰인 문장이 드물 정도로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다.
 
지난번 말했듯 '이(而)
' 는 A와 B를 이어주는 접속사다. 그래서 이 글자는 대부분 'A而B' 라는 구조의 문장을 만든다. 이 때 A가 동사이고 B가 동사인 경우 '이(而)
' 의 대표적인 용법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A에(대하여)
B한다' 라는 뜻이다. 논어에 나오는 '낙이불음(樂而不淫)
, 애이불상(哀而不傷)
' 을 가지고 살펴보자. 이 구절은 일반적으로 '즐거워도 지나치게 음탕한 정도로는 하지 말며, 슬퍼도 몸을 상할 정도로 비통해하지 말라' 는 의미로 동양전통의 중용사상을 나타내는 구절로 인용되어 왔다. 그러나 보다 정확한 번역은 '즐거운 일에 음란하지 말고, 슬픈 일에 상처받지 말라' 이다.
 
*** 역접해봐도 뜻 통해야
 
이(而)
로 접속되는 문장의 의미가 올바르게 번역되었는가는 역접을 해봐서 뜻이 통하는가를 보면 된다. 즉 'A而B' 라는 문장은 'B한 A' 라고 읽으면 거의 뜻이 통하게 되어 있다. '낙이불음' 은 '불음(不淫)
한 낙(樂)
' 이라는 말이고, '애이불상' 은 '불상(不傷)
한 애(哀)
' 이다.
 
이렇게 볼 때에 저 문장에 '지나침을 경계하는 절제나 중용' 을 담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음란하지 않을 정도로 즐기라' 가 아니라 '음란을 즐기지 말라' 는 말이고, '몸을 상하지 않을 정도로만 슬퍼해라' 가 아니라 '슬픈 일에 몸을 상하지 말라' 이다.
 
두 번 째 용법은 A라는 행위와 B라는 행위의 사이에 시간적인 선후 관계를 정의하는 것이다.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
' 라는 문장은 허사인 '지(之)
' 가 들어가 'A而B之' 라는 구조이다.
 
이때는 'A라는 행위를 하고 나서 B를 한다' 가 아니라 'A라는 행위를 한 것을 B한다' 고 옮겨야 정확한 번역이 된다.
 
왜냐하면 '지(之)
' 가 A를 목적격으로 만들어주는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배운 것을 때로 익힌다' 인데 만약에 이 문장이 '지(之)
' 가 없는 그냥 '학이시습(學而時習)
' 이라면 '배우고 나서 익힌다' 가 된다.
 
논어에 나오는 '문인(問人)
왈(曰)
인자선난이후획(仁者先難而後獲)
가위인의(可謂仁矣)
. ' 라는 구절로 이 의미를 살펴보자.
 
'인자선난이후획(仁者先難而後獲)
' 을 보통 번역하여 '어진 자는 어려움을 먼저 겪고 뒤에 얻는다' 라고 하는데 역시 '선난(先難)
' 과 '후획(後獲)
' 이 '이(而)
' 로서 연결되어 있는 구조이다.
 
때문에 '먼저 어려움을 겪고' 와 '나중에 얻는다' 는 것은 서로 관계없이 독립된 의미가 아니다. 이 문장의 올바른 뜻은 '어진 이는 반드시 노력을 한 것에 대해서만 대가를 얻는다' 이다. 봄에 씨를 뿌리고 여름에 밭을 갈아 가을에 곡식을 얻는 것처럼 반드시 인과 관계가 있는 고생과 대가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유명한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 도 마찬가지다. '온(溫)
' 은 '따뜻할 온' 이다. 그래서 '온고(溫故)
' 란 말은 '옛 것을 따뜻이 한다' 로 옮길 수 있는데 조금 자연스럽게 표현하면 '옛 것을 데워' 가 되겠다.
 
오늘에 살려서 쓰지 않는 옛 것은 차가운 음식이나 마찬가지이다. 식어서 차갑고 굳은 음식도 따뜻이 데우면 새로 맛이 나서 먹을 수가 있는 음식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옛 것을 따뜻이 데워서 새로운 것을 안다' 고 표현한 것이다.
 
이 말은 '아무런 노력을 안하면 옛 것에서 무엇을 얻을 수 없다' 는 것이 본 뜻이다. 우리가 지금 고전을 배우고 이런 칼럼을 읽는 것이 다 '온고(溫故)
' 다.
 
그런데 자칫 잘못하여 '열고(熱故)
!' 를 하면 몽땅 태워먹는 수가 있으니 조심해야 할 일이다.
 
다음으로 살펴볼 용법은 'A而B' 라는 구조의 문장에서 A가 명사이고 B가 동사나 형용사인 경우이다. 이때는 'A가 B한다' 가 되는데 대개는 'B한 A' 라고 번역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때가 많다. 예를 한 가지 보자. 논어에 나오는 말이다. '자왈(子曰)
무민지의(務民之義)
경귀신이원지(敬鬼神而遠之)
가위지의(可謂知矣)
. '
 
이 말을 지금까지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사람의 도리에 힘쓰고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하라' 는 의미로 읽어 왔다. '경귀신이원지' 라는 문장은 저렇게 읽을 수가 없다.
 
조금 길다 싶은 한문을 쉽고 정확하게 읽는 요령은 우선 동사와 목적어를 확인하는 것이다. 이 문장에서 동사는 경(敬)
이고 목적어는 지(之)
다.
 
때문에 이 문장의 기본 골격은 '경지(敬之)
' 라는 두 글자다. 즉 '그것을 공경하라' 이다.
 
그러면 여기서 목적격 지시대명사인 '지(之)
' 가 가르키는 목적어절이 무엇인지만 알면 된다. 그것이 바로 '귀신이원(鬼神而遠)
' 이다. '귀신(鬼神)
' 이 명사고, '원(遠)
' 이 동사다. 그래서 '귀신이원(鬼神而遠)
' 은 '귀신은 멀리 있다' 이다.
 
그런데 '지(之)
' 가 이 문장을 목적어절로 만들고 있기 때문에 '멀리 있는 귀신' 이라고 옮기게 되는 것이다. 문장 전체의 뜻은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할 도리를 다하고 멀리 있는 귀신은 다만 공경하면 된다' 는 의미다.
 
*** 허사 '之' 역할도 소홀
 
이 구절에서 '무민(務民)
' 과 '경귀신(敬鬼神)
' 이 서로 대구를 이루고 있다. 공자가 강조하는 것은 귀신에 대한 대접이 아니라 산사람에 대한 도리이다.
 
'멀리 있는 귀신은 공경이나 하고 오로지 가까이 있는 살아있는 사람에게 할 도리를 다하라' 는 말씀이다. 여기서 종래의 번역과 같은 문장이 되려면 경이원지귀신(敬而遠之鬼神)
이라야 한다.
 
A而B라는 문장을 띄워읽는 방법은 A가 동사고 B도 동사면 'A而 B' 이고, A가 명사고 B가 동사나 형용사인 경우는 'A而B' 로서 '이(而)
' 의 앞과 뒤를 붙여서 읽어야 한다. 'B한 A' 라는 하나의 명사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 문장은 '敬 鬼神而遠 之' 이지 '敬鬼神而 遠之' 도 아니고 '敬鬼神 而遠之' 도 아닌 것이다.
 
고전의 해석서들이 띄어 읽기조차 정확치 않는 것이 많다. 그러다 보니 번역은 물론 공자의 사상도 왜곡되어 버린다. 공자가 중요시했던 것은 산사람이지 결코 죽은 귀신들이 아니었다. 생각해 보라. '사람의 도리를 다하고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하라' 는 것이 무슨 말인가? 무의미한 말장난이 아닌가?
 
논어에 나오는 유명한 문장을 하나 더 보자. '인이불인(人而不仁)
, 여례하(如禮何)
, 인이불인(人而不仁)
, 여악하(如樂何)
' 이다.
 
'인이불인(人而不仁)
' 은 일반적으로 '사람이 어질지 못하면' 이라고 읽어왔는데 보다 문법적으로 정확한 번역은 '불인한 사람' 이다.
 
'불인한 사람에게 예가 무엇이며 불인한 사람에게 악(樂)
이 무엇이겠는가?' 하는 소리다. '불인' 을 '인자하지 않다' 고 옮기면 '인(仁)
' 을 너무 협의로만 해석하는 것이 된다.
 
이 외에도 '이(而)
' 라는 어조사의 용법은 몇 가지가 더 있다. 이런 것만 알면 고전의 독해는 어려울 것이 없다.
 
이경숙 <노자를 웃긴 남자>
저자
 
<'而' 자 용례 비교>
 

'敬鬼神而遠之'
 
지금까지 해석〓귀신을 공경하되 멀리하라
 
李씨의 해석〓멀리 있는 귀신은 다만 공경하면 된다

 

 

이경숙 <노자를 웃긴 남자>
저자

출처 : 벽운공
글쓴이 : 겨자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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