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여사의 제4의 활동/우리동네 어디까지 가봤니

오래된 것이 다 싫은 것 만은 아니더라 / 노비산 근처 오래된 골목이야기

하늘위땅 2011. 12. 23. 15:44

조조 영화를 보고 창동까지 걸었다.

바람이 많이 불고 날씨가 꽤나 춥다고 예보에선 난리였는데 폴라폴리스 장갑 끼고 씩씩하게 걸었다.

30여분 남짓 걸리는 거리니 천천히 노닥거리면 걸어도 창동 가배소극장 연극 볼 시간까지는 되겠다 싶었다.


합성동에서 창동까지.

30여분 돌파.


잠시 망설이기도 했지만.. 

다리통 굵어지는 것에 맘을 썼던 시간을 떠올리며 내년 여름 짧은 옷은 다 입었다 싶어서 그랬지만

가뜩이나 운동부족이라고 해쌌는데 걸어야지.


운동화도 신었고 단디 챙겨 입었고 장갑도 있고 고고고!!


동중 올라가는 사거리 쯤 도착을 하니 슬 잠시 노비산쪽 골목이나 둘러볼까 하는 맘이 생겼다.

그냥 갈까 아니 가볼까 하는 맘이 갈등을 잠시 했지만 연극 볼 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어 들렀다 가보자.


슬쩍 회원천을 지나고 골목으로 접어 들었다

소방도로 확충으로 뻥뻥 잘 뚫린 길을 두고 남아 있는 꼬불꼬불 골목길은 다소 짦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콘크리트, 남은 찌꺼리 아스팔트로 덮힌 골목길이지만 오랜시간 견뎌온 벽들은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그대로 남아 있는 창문도 곰팡이 슬고 이끼가 낀 담벼락도 몇십년전 그 모습 그대로 있구나


낮은 2층 올라가는 철 계단은 어린시절 또 다른 로망이였다.

2층방에서 내려다보는 골목에 대한 환상이 있었던 어린시절..

저런 계단을 올라 작은 내 방을 가지는 것이 소원이였던 그 시절...


담에 못을 박아 빨래를 널어 두었던 그 시설을  떠올려 보는 건 일도 아니구나.

마당이 없었던 도시의 팍팍한 집 살림살이 라는 건 공간활용이 최우선이였던 것 같았다.

담벼락 빨래줄.







언제적 달았던 간판일까?

상남상회 ...상회..라는 간판은 어릴적 골목에 자리한 점빵의 이름이기도 했는데..







골목이 깊다 보니 밤길을 지켜주는 누군가 필요한 모양이다.

지금은 그래도 소방도로 덕에 많이 짤려서 짦긴 하지만 여전히 보안에 취향한 골목이 있는 모양이다.


슬쩍 넘겨다 보는 장미 가지가 뻘쭘하네






골목은 여전히 6~70년대 모습이다.

내복입고 뛰어 다녔던 그 70년대.


포르스름한 페인트 칠을 했지만 허물지 않은 다음에야 아~ 오래된 집이구나 단박에 알아차린다.


골목 끝에 있는 스레트 지붕 황토색 문 집엔 감시카메라가 설치 되어 있었다

도둑이 설치나?








잘 뚫린 도로 때문에 한길가 집이 되어버린 곳은 재빠르게 새 건물로 교체

그러고도 어느듯 세월이 상당스럽게 흐른 모양이다 

담쟁이가 담을 감싸고 잘 붙어 있는 걸 보니.





노비산쪽 비탈진 길로 접어 들었다.

꼬불꼬불 잘 포장된 골목길이 끝인지 아닌지 보인다.


경사진 골목을 올려다 보니 하늘에 우뚝 선 저 십자가 이쪽에도 저쪽에도 보였다

작은 흙속에서 양분을 빨아 먹고 자란 나무가 제법 굵다.


골목에 사는 사람들의 작은쉼터가 되기도 했을까?








제법 높은 곳이다

작은 텃밭은 집 그늘에 가려저 응달인데도 파릇하게 잘 자라고 있었고

저멀리 마산시가 한눈에 잘 들어온다

시야확보는 최고다


오래된 전봇대가 얽히고 설킨 전깃줄에 꼼짝도 못하고 서 있다.

하늘은 언제나 지저분하다





새 길을 내기위해 헐린 집들과 남은 집들 그리고 골목길

작은 땅이라도 일궈 밭을 만드는 부지런한 사람들..






고무통에 심어진 백년초는 언제부터 저렇게 달려 있었을까

높은 곳에 창이 난 작은 방엔 밖으로 수건이 햇빛을 받고 달려있다.


근처에서 개 짖는 소리가 요란하다

아마도 내게 짖어대는 소리겠지.


'얌마 나 도둑아니거덩'





비탈진 골목에 선 집이라도 따뜻하고 시원해야 한다.

보일러 연통과 아슬하게 얹힌 실외기가 잘 살고 있다는 증표같다.






집을 허물고 다시 올리지 않는 다음에야 없어질 수 없는 골목으로 난 창은 그대로 일 수 밖에.

멋을 낸 마름모 올록볼록 유리창과 무늬가 들어간 창살로 멋을 낸 나무 창..


저런 창이 난 방에서 살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단층 집 옥상 한켠에 자리한 배불뚝이 단지속에는 뭐가 들었을까?

옥상을 둘러친 담 벽돌도 그 당시는 나름 멋을 낸 것이겠지.


건너집 밋밋한 옥상에선 백년초가 쓰러질 듯 넘어다 본다.


어릴적에 집집이 저런 백년초 화분 하나씩은 다 있었는데..

요즘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광경이다.






막다른 골목인 모양이다

끝에서 불어 나오는 바람이 스산해서 그냥 지나칠까 했는데


아주 오래된 기와집(한때는 잘 나가던 어느 부잣집 인 듯) 담벼락에 선 나무 전봇대가 이끈다.


양쪽 시멘트로 만든 굴뚝 사이에 선 나무 전봇대다.

철거가 안된 모양이다.

옆에 콘크리트 전봇대로 대체가 된 것 같은데 여전히 살아 있다.


양철 모자를 쓴 가로등을 달고 있는 걸 보니 아직은 쓸데가 있어서 놔둔 모양이다.








골목안에 자리한 제법 큰 규모의 기와집.

정원도 있고 정원수도 제법 화련한 걸 보니 좀 살던 이의 집 같은데 지금은 폐가가 되어 을씨년스럽게 겨울 바람을

맞고 있었다.






그리고 또 골목 ..골목


한때 언니가 독립을 했던 곳이 이런 골목을 한참 돌아 들어간 작은 방이였는데 올때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못나간다는 언니말에 어찌나 쫄았던지..나중에서야 하수구 구멍을 찾아나가면 큰 길로 나간다는 말을 듣고는

미로 같은 골목길에 대한 공포를 없앴다.








교도소 담벼락이라고 가까이 가면 나쁜 사람들이 혼내준다는 언니오빠들의 거짓말에 이 골목에는 얼씬도 못했는데

지금 봐도 조금 으스스하긴 하다

빨간 벽돌과 높은 담장이 위압감을 주기는 하네....


중간에 끊어진 골목을 이어이어 요리조리 노비산 자락 상남동 일대의 오래된 골목을 1시간여에 걸쳐 걸어보았다.


그 어려운 시절에도 요즘 같은 좋은 시절에도 골목을 남아 있고 사람들은 살고 있다.

골목에도 많은 변화가 있고 새 길도 났지만 새 칠을 해서 새것처럼 보이려 해도 세월은 고스란히 그 곳에 흔적을 남겨 놓고

가끔씩 이리 찾아드는 사람들에게 오래전 기억을 떠올리게 해준다.


다행히 시간이 잘 맞아 추운 겨울 거리를 헤매지 않고 연극을 관람할 수 있었다.

동짓날 상남동(노산동) 골목 탐방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