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설인 줄도 몰랐습니다.
새벽녘에 보일러가 너무 빵빵하게 돌아가고 있어 슬쩍 온도를 낮춰 땀이 나지 않도록 했는데 일어날 즈음 어깨부위가 으스스해서
'아 오늘 좀 추운갑다' 그랬을 뿐.
머리도 감고 하의 타이즈와 양말도 겹으로 신고 추위 대비 태세를 딱 갖추고 집을 나섰습니다.
콧속으로 들어오는 새벽공기가 칼날 같았지만 금방 차를 타기 때문에 입김 한번 내어 주고 후다닥 마티즈를 몰았지요.
유난히 부산스럽게 왔다갔다 요동질 치는 출근 차량들이 정신을 상그럽게 했지만 이런날도 있고 저런날도 있고 그런갑다
여전히 초보운전자는 운전대가 조심스럽습니다.
FM 음악방송에서 대설이라면서 눈이 많이 오는 절기라고 말해서 대설이구나 했을뿐인다.
맑은 하늘이 서서히 밝아져 오니 이런 날씨에 뭔 눈이 오려고 피식! 했더랍니다.
한참 일과 준비를 하고 있는데 주변이 컴컴해지는 느낌이 오더라구요
"돈생아 날씨가 와 일노"
"몰라 오늘 눈온다더만 꼭 눈 쏟아질 날씨다"
"무신 12월에 마산에 눈이 오긋나"
"그러게 말입죠 뭔 눈이 지금 올까 걍 비나 몇방울 뿌리긋지"
그랬는데 그랬는데 쎄꼬롬한 공기가 예사롭지 않더니 허연 뭔가가 하나씩 떨어졌던 모양입니다
"언가야 눈 온다 눈"
"머시라 눈이라고라!"
"그러게 12월 눈이라..히야 별일도 다 있네"
대설은....
11월은 중동이라 대설 동지 절기로다
바람 불고 서리 치고 눈 오고 얼음 언다
― 『농가월령가』중 십일월령
소설 뒤 대설을 놓은 것은 동지를 앞에 두고 눈다운 눈이 이때쯤 내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마다 눈이 고르게 오는 것이 아니어서 대설이라고 해도 어느 해는 소설보다 적게 오기도 한다.
"눈은 보리의 이불이다."라는 말이 있다.
눈이 많이 내리면 보리를 덮어 보온 역할을 하므로 동해(凍害)가 적어 보리가 잘 자라기 때문이다.
부네야 네 할 일 메주 쑬 일 남았도다
익게 삶고 매우 찧어 띄워서 재워두소
― 『농가월령가』중 십일월령
후닥 주방을 뛰쳐나가 창밖을 보니 눈이 바람과 함께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우산을 준비한 준비성 좋은 사람들은 우산을 펼쳐 들고 예보에는 있었지만 믿지 않았던 눈 때문에 곤혹스러워하며
종종 걸음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입니다. 뛰 듯 걷는 다 거.
눈이 오면 익숙치 않은 노면 상태에 깜놀할 우리 지역 운전자들 속히 갈 길 재촉합니다.
쌓이면 오도가도 못하고 그냥 도로위에서 안절부절 해야 할 지도 모를 상황이 오니까 말입니다.
쌓이지도 않은 눈에 도로는 엉망으로 차가 밀리기 시작합니다.
은색 마티즈 위에도 눈이 쌓입니다.
"세차도 안했는데 눈이 세수를 시켜줘서 좋겠다 마티즈야"
이너무 차는 암말도 않습니다 뭐 아니꼽다는 뜻이겠지요.
좀 자잘하게 내리던 눈이 펑펑 정말 함박눈이 되어 마구마구 내려주십니다.
어느새 길 위에 하얗게 쌓이기 시작합니다
바람도 찹찹하니 살을 떨게 합니다.
눈속에 꽃이라...
가리느까서 피기 시작한 저 국화꽃은 어쩝니까.
순식간에 마티즈를 덮어버린 눈입니다.
이러다 길 다 막히는 거 아닌가 은근히 걱정이 슬 됩니다.
눈오는 날은 손님이 좀 적을지도 모르는데...우짜지
차들은 엉금엉금 조심조심 난리부르스 입니다.
이 눈에 접촉사고가 난 모양입니다.
넘 씨게 달리니까 사고가 납니다. 서로간에 조심을 해야하는데 쯔쯔..
무지개우산을 들고 선 저 처자는 택시를 잡으려는 모양인데 아이고 택시가 쉽게 잡힐 것 같지 않습니다
한참을 오돌돌 떨면서 차를 잡으려 섰었는데 택시를 잡아 타고 갔는지 모르겠네요
눈이 펑펑 오니 예상과는 달리 손님이 끊이지 않아서 무척이나 바쁜 점심시간을 보냈답니다.
준비된 음식이 바닥이 나서 다시 준비하고 치우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답니다.
그럼에도 눈은 더 큰 사이즈로 펑펑 내려주시고 살포시 길이 미끄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잠시 틈을 이용해 차 위에 눈도 치우고 사람들 다니는 인도 눈도 좀 치우고 소금까지 슬쩍 뿌렸습니다.
눈사람이라도 뭉쳐 만들어 볼 까 했는데 눈이 자꾸 퍼석 퍼져서 만들기 쉽지 않았답니다.
'아들은 오늘도 죽어나겠다 이리 눈이 많이 오면..'
점심 시간 진을 빼고 나니 허기가 져서 추억의 쌀박상을 사다가 동생들과 입안 다 베끼지도록 먹었습니다.
파삭하고 달달하니 어린시절 생각이 납니다.
쌀박상과자(우리는 이렇게 불렀습니다)
아동틱하고 촌스럽게 이게 뭐냐 하셔도 됩니다 하하하
덤으로 이웃주민이신 병원장 사모님이 보내준 대봉감이 홍시가 된 녀석이 있어 베스킨라빈스 스푼으로 동생들과 노나먹었습니다
쫀득하니 질감이 찰 진 것이 왜 대봉감 대봉감 하는지 알겠더라구요.
눈은 그치고 녹아서 질척이네요.
다시 또 눈이 오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지만 눈오면...눈오면 다들 너무 좋아라하니까 막 흥분되는 맘은 감출수 없습니다.
퇴근 길이 살짝 걱정이 되지만 너무 빨리 녹아버리는 눈이 아쉽네요.
12월에 눈을 본 것이 처음인 것 같은데 제 기억이 맞을까요?
신기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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