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여사의 제3의 활동/책,영화,드라마 그리고

한글날 읽으면 좋을 책 / 가즈오의 나라 / 김진명

하늘위땅 2009. 10. 9. 08:49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를 꼽으라면 당연 ' 김진명' 선생님을 주저없이 말한다.

그의 책은 늘 읽고나면 가슴속 뭉클함과 울컥 치밀어 오르는 애국심을 무한히 자극하기 때문이다.

딱 그것 때문에라기 보다는 재미있는 내용이라는 게 정확한 답이 아닐까.

 

일단은 재미있는 줄거리와 첫장부터 한호흡도 쉬지않고 읽어내려가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물론 읽으면서 이럴수가 이런일이 있단 말인가 등등 치밀어 오르는 분노도 느끼고

힘없는 민족의 가여움도 느끼고 다시금 내나라를 더더욱 사랑하고 아껴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된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읽었을때는 휴...힘없는 나라의 비애, 어쩔수 없음에 참 서글펐다.

 

그간의 많은 책속에서 우리 민족 정신과 문화와 미래를 찾자고 작가는 말하는 것 같았다.

 

그중에 특히 몇번을 다시 읽고 읽었던 책 가즈오의 나라.

 

책을 덮으면서 한줄기 눈물이 가슴에 흘렸다.

가즈오가 너무 불쌍하고 애처롭고 안타깝고 .....

 

 

 

 

책 소개 .....

 

김진명만큼 역사인식과 실천정신이 투철한 작가는 없다.

민족의 자긍심과 국가의 자주권을 지켜내려는 한 소설가의 끊임없는 추적!

광개토대왕비에 숨겨진 비밀을 찾아라!
임나일본부설로 조작된 역사의 허위를 고발한다!

할아버지를 죽게 한 민족의 배신자에게 입양된 한국인 아이. 가즈오.

어느 날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그는, 정체성의 혼란과 정신적인 충격으로 괴로와하는데...

광개토대왕비의 비밀을 연구하던 재일 유학생 박상훈은,

교묘한 방법으로 죽임을 당한 일본의 역사학자 가네무라 준이치의 집에서

한국 역사의 비극을 목도하게 된다.

자국민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타국의 역사마저 조작하는 일본의 비열함 앞에 분노하는 한 청년!

와타나베는 대동아 연구소라는 극우단체를 이용하여 '대동아 공영'을 외친다.

'울란야호이의 전설'을 찾아 러시아로 떠난 상훈은 강제이주된 카레이스키의 현실을 접하고

역사에 대한 분노에 오열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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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명 선생님은..

 

한국 출판사상 최고의 베스트셀러를 보유한 작가. 그러나 450만 부가 팔려나간 것으로 알려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쓰기까지 그는 습작도 해 본 적이 없는 문학의 `문외한`이었다. 신춘문예나 문예지를 기웃거려 본 적도 없었다.
다만 고등학교 때도 입시공부는 팽개치고 역사책이나 철학책을 읽고 친구들에게 강의를 하려 들 만큼 책을 좋아했고, 대학 때도 고시 공부는 팽개치고 매일 도시락 두 개를 싸든 채 남산도서관에 처박혀 철학 사회학 종교에 물리학 화학 천문학 수학책까지. 미친듯이 읽어제꼈을 만큼 책을 좋아했던 것이 그가 보인 유일한 `싹수` 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하고 나서는 `일하기 싫어` 바둑 두고 노는 룸펜 생활을 한 6년 동안 했다. 아버지가 경영하는 회사에 이름만 올려놓고 그렇게 놀다가 회사가 망하는 바람에 자신의 사업을 시작했다.

기계제조와 환경오염 방지 기술 개발에 힘을 쏟은 그의 회사는 그러나 이런저런 어려움에 부딪혀 3년 만에 망하고 만다. 두 번의 실패를 통해 집안의 재산도 몽땅 날렸다. 집 두 채, 아버지 집, 땅......

그러나 인생은 새옹지마다. 사업 실패는 그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었다. 사업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 해외 출장을 다니다 보니 우리나라 꼴이 너무 한심해, 김포공항으로 돌아 올 때면 늘 가슴이 답답하고 고통스러웠다고 한다. 그 때의 고민이 그의 민족주의적 소설 구성의 밑천이 되었다.

그의 소설 쓰기에는 불행한 가족사도 한 몫 했다. 1980년 서울대 대학원을 마치고 군에 입대한 형이 광주민주항쟁 때 영내에서 데모를 했다고 한다. 결과는 뻔해서 숨만 붙어 있는 채로 가족이 인계 받았는데, 그 후 7년간을 멍하니 있다가 저 세상사람이 되고 말았다. 김진명은 형의 죽음을 보면서 그냥 먹기 위해서만 살아서는 안 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고민들이 합쳐져 원고지에 처음 쓴 것을 출판계 친구에게 보여줬더니 '책을 내면 좋겠는데 글솜씨가 서투르니 많이 고쳐야겠다'고 했다. 그렇게 나온 것이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의 전신인 『플루토늄의 행방』이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출판사의 손을 거쳤지만 그가 볼 때도 불만족스러웠다. 결국 사업을 접고 난 김진명이 직접 이 소설을 개작해서 펴낸 것이 『무궁화꽃......』이었다.

종종 `수백만의 독자를 가지고 있지만 단 한 명의 평론가도 갖고 있지 못한 작가`로 비판받기도 하지만, 그 자신은 이 점에 별로 연연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소설이 `대중소설`이라는 점을 적극적으로 인정한다. `그래서 어쨌다는 것이냐`는 것이다. 예술적 문학도 필요하지만, 폭넓은 대중적 관심사를 가독성 높은 문체로 펼쳐 나가는 대중문학도 분명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신 그가 특별히 중시하는 것은 `메시지`다. 자신이 소설을 쓰는 이유도 독자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남북한이 연합하여 일본과 싸운다든가 하는 강한 민족주의적 정서를 주조로 하는 그의 메시지, 속도감 있는 전개, 짜임새 있는 구성, 술술 읽히는 문체 등이 김진명 소설이 수백만 대중 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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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유도원도

 
'진나라 때 무릉에 살던 한 어부가
우연히 산의 작은 구멍을 발견해 들어가니
찬란한 경치가 펼쳐져서 너무나 놀라
실컷 주육으로 대접받고 나온 후 나중 거기서 살기 위해
어부와 많은 사람들이 찾았으나 다신 찾지 못했다.’
이것이 도연명이 지은 ‘도화원기’로 이 글이 뿌리가 되어
‘도원경’하면 이상향이 되어 왔던 것이다.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로 명필이며 풍류객인 안평대군이
어느날 도원명의 도원경을 찾아드는 꿈을 꾸었다.
그 꿈에 흡사한 지금 서울 세검동의 무계에 터를 잡고
정자를 크게 지어 ‘무계정사’라 이름지었다.
(지금은 비록 복개로 흔적도 없지만......)
그리곤 안견에게 꿈에본 도원경을 그리게 했다.
그것이 '몽유도원도’이다

이 조선조 최고의 명화가 임진왜란 때 왜인들에게 약탈되어
일본 천리대 도서관에 있는 것을
국립중앙박물관 개관기념 때 잠시 빌려 전시되었다.
우리 명화가 왜 일시 귀국전이 되어야 하는가?
이 모순이 안타깝기만 하다.


몽유도원도 발문

 

국립박물관에서 몽유도원도 전시를 하고 있다고 하지요

일본으로 다시 돌아갈 우리의 문화재...

가즈오의 나라에서도 몽유도원도가 어디에 있는지 나옵니다.

작가도 소설을 통해 우리 문화재 반환을 요구하는 것인지도 모르겠군요...

아니면 우리 국민들의 각성을 바라는 것일지도 모르고요..

 

한글날, 몽유도원도 전시등을 보면서 문득 떠오른 책이였습니다.

자꾸  잃어가고 있는 애국심과 우리민족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다시 찾기를 바라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