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여사의 제4의 활동/추억의 빼다지

김치도 썰어 내는 방법이 따로 있나요?

하늘위땅 2011. 1. 20. 11:00

김장김치가 어느새 익어버렸다.

김치냉장고만 믿고 아직도 생김치 맛이겠지 했는데 한동안 다른 김치 먹느라 김치통을 열어보지 않았더니 몰랐었나 보나.

시큼한 익은 김치 냄새가 침을 고이게 했다.

 

가위로 대충 썰어 두려다 도마에 가지런히 놓고 오랜만에(?) 칼로 김치를 썰어 보았다.

갑자기 지난 기억이 떠올라 피식 웃고 말았다.

 

집에 가정부가 있었던 것도 아니면서 제대로 부엌일을 해 본적이 없이 시집이란 걸 갔다.

닥치면 뭐든 다 하게 된다는 주변 사람들의 말을 전적으로 믿으며 똥배짱을 부리면서 말이다.

할 줄 하는 게 없으니 부엌은 참 어색하고 서 있을 곳을 찾지 못해 매번 시집에라도 갈라치면 밥 때가 제일루 무서웠다.

 

 

▶ 김장김치 익는 냄새가 나나요?

 

 

 

 

다행스럽게도 직접 뭔가를 해서 차려낼 일은 없었지만 준비되어 있는 것들을 차려내는 것도 딴엔 참 어려웠었다.

한번은 썰어 둔 김치가 없어 한포기 꺼내어 썰어서 낸 적이 있었다.

우리집에서 먹던 방식이 아니라 혼자 만의 생각으로 조금 잘게 썰어서 올렸던 것 같다.

 

어색한 어른들 앞에서 손으로 찢어 먹기도 어렵겠고 서로가 불편할 것 같아 친절하게 한입(?) 크리고 젓가락 한번에 쑥 집어올 크기로 썰어서

접시에 담아서 내었다.

별 생각없이 밥 상에 앉아 식성도 먹성도 좋게 밥을 먹기 시작했다.

 

한입크기로 썰어진 김치를 보면서 흐믓해하면서 말이다.

무사히 식사시간이 끝나고 뒤처리까지 끝난 뒤 홀가분하게 다들 차를 마시는 시간.

 

" 김치 누가 썬 거야?"

 

시 고모 한분이 말씀 하셨다.

 

"그러게 잘잘하게 썰어져 있어 우스워죽는줄 알았네"

 

"새애기가 썰었나?"

 

부엌에 있던 난 눈치도 없이 큰소리로 네! 라고 대답을 했다.

 

"아기야 김치를 그렇게 잘잘하게 썰어 버리면 맛 없어 보이잖아 아기들도 아닌데 그게 뭐냐?"

 

시고모 한분이 웃으시며 말씀을 하셨다.

그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아버렸다

'어 이거 지금 나 트집 잡는 거지?"

 

" 드시기 좋으라고 그렇게 썰어 봤어요 ^^"

 

"다음부턴 소꿉장난 하듯 썰지 말거라 모르면 물어보고.."

 

'김치도 썰어 내는 방법이 따로 있나 것두 배워야 하는 거야 뭐야..'

 

괜시리 그 고모님 때문에 분위기는 싸~ 아 해졌고 무안해진 나는 어쩔줄 모르고 부엌에서 서성거렸다.

그땐 뭔가 자꾸 트집을 잡은 것 같고 좋지 않은 말을 하면 버럭 화부터 올라와 견딜수가 없었던 것 같다.

날 책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집을 부모님을 나쁘게 말하는 것 같고 무시하는 것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였던 것 같다.

 

그 김치 사건(?)은 한참을 날 괴롭게 만들었고 완벽한 주부로의 변신을 유도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었다.

도화선이 된 것이랄까?

 

먹기좋은 크리고 김치를 썰고 길이로 또 한번 칼집을 넣어 찬통에 두어포기를 썰어 넣었다.

 

'젓가락으로 한번에 집어 들어 짜지 않게 먹을 양이 되도록 하는 것이 방법이지 쳇!'

 

 

 

 

▶  김치속 박아둔 무우도 참 맛있지요

 

 

 

 

 

그 고모님은 그 후로도 간간히 나에게 불을 붙이셨고 그것때문에 더 열심히 부엌일을 하게 되었다.

친구들 말마따나 '시' 자 들어간 건 쳐다도 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마음 한편이 불편하긴 했으니 더더욱 책 잡히지 않으려 노력을 했던 것 같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러 집안 일이며 육아며 집안 자잘하며 큰 행사를 거뜬하게 해내는 날 보며

 

" 큰며느리 참 잘 들였네"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셨다 그 고모님이.

 

그런데 그 칭찬마저도 왠지 얄밉게 들렸던 건 며느리들의 괜한 트집이였을까?

김치를 썰면서 참 별생각을 다했다.

그 때 그 서운했던 마음이 지금은 웃음이 나는 추억으로 남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