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여사의 제3의 활동/국보건축물 23선

[국보건축물23선] 통영 세병관

하늘위땅 2013. 2. 4. 12:00

지난번 여수 진남관에 이어 어제는 여수 세병관엘 다녀왔습니다. 진남관을 본떠서 만들었다는 이용재님의 책 내용을 확인해 보고 싶은

욕구가 너무 강해서 좀 있다 따신 봄 날까지 기다릴수가 없었답니다.


참말로 그냥 가면 휘 그냥 둘러보고 올 뻔한 건축물입니다. 진남관을 처음 봤을땐 오래전 캄캄한 밤이였는데 시원하기 그지없었기에

딱 그뿐인줄 알았다가 다시 제대로 본 뒤 너무 창피했었는데 이 세병관도 옴마야...


짜달시리 넓기만 이런 건물을 살펴보고 째려보고 할 것이 어디있다고 통영가면 그냥 통과하거나 있으니까 들렀다 가는 정도였는데...

쫌 알고 가니 아~ 이건 뭐 감동의 물결입니다. 단순함이 주는 당혹스러움, 건축물에 대한 경외감 그리고 설계를 한 사람에 대한 존경심이 

그냥 나옵니다 (건축에 관해서 거의 아는 것이 없는 저 같은 사람조차도)


왜? 왜?


세상살이는 이 왜? 라는 의문과 호기심이 없다면 정말 재미없는 곳일겁니다.

왜 난 이런 건축물 앞에서 쫄고 있는가? 왜?

너무 단순해서 어떤 설명을 해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쫄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더 별거없다는 식으로 회피를 했던 것입니다.


통영 앞바다를 억지로(지금 공사중이라 막혀 있어서) 내려다 보면서 다시 또 타임머신을 작동시켜 보았습니다.



세병관은 이경준(李慶濬) 제6대 통제사(해군총사령관이라고 해도 되겠지요) 가 두릉포에서 통제영을 이곳으로 옮긴 이듬해인 

조선 선조 37년(1604)에 완공한 통제영의 중심건물입니다.  이 건물은 창건 후 약 290년 동안 3도(경상·전라·충청도) 수군을 총 

지휘했던 곳으로 그 후 몇 차례의 보수를 거치긴 했지만 아직도 멀리 남해를 바라보며 당시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 지방관아 

건물로서는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17세기초에 건립된 목조단층 건물로 경복궁경회루(국보 제224호), 여수 진남관

(국보 제304호)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건물에 속하고, 여수 진남관과 더불어 그 역사성과 학술적·예술적 가치

가 충분하여 국보로 지정이 된 것이겠죠.


옛날 우리 조상님들께서는 공부도 하고 건물도 설계하고 군인이면서 건물을 짓기도 한다는 사실 . 

공부가 깊어지면 모든 것은 통하니 뭐든 다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요즘 공부는 그럼 공부가 아닌게지요... 

불쌍한 우리 아이들 그리고 우리들.. 뭘 배운겁니까!


이 '세병관' 현판이 참으로 커다랗게 달려 있습니다. 아래서 올려다 보니 곧 떨어질 것 처럼 느껴집니다.

시원스런 필체가 힘이 팍팍 느껴집니다. 누가 쓴 글씨일까요?


후임으로 온 서유대 통제사가 이 현판을 썼다고 합니다.

세병관 즉 ‘은하수를 끌어와 병기를 씻는다’는 두보의 시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두보의 시 ‘세병마’ 마지막 대목에는 ‘어떻게 하면 힘센 장사를 얻어 하늘의 은하수를 끌어다가, 병기를 씻어내어 길이 사용하지 

못하게 한단 말인가’하는 문구가 있는데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기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풀이가 된다네요(한문에 약해서)






통영시외버스터미널에서 거의 대부분 중앙시장쪽으로 버스가 갑니다. 후불교통카드가 안되서 조금 당혹스러웠지만

미리 준비해간 1,200원을 넣고 작년에 이어 두번째 본격적인 통영 탐구의 길 위에 선 것입니다.

작년엔 관광지 탐방 이번엔 깊이 있는 발걸음 (저 혼자만의 타이틀이겠지만 하하하)


중앙시장 들어가는 입구 토성고개에서 차가 느리게 움직입니다. 코앞이 중앙시장인데 싶어 기사님께 또 물어봅니다


"아저씨 차가 왜이리 밀려요?"


대체로 친절한 통영 버스기사님들(전국적으로 유명하지요)의 친절한 대답이 이어집니다.


"중앙시장 장날이라서 그래요"


"오 장날인데 일케 차가 밀리나요?"


"토요일이고 관광객들도 많고 해서 그렇지요"


아 그렇습니다 늘 평일에만 다니다 보니 토요일 이런 복잡함 어색합니다.

코앞에 중앙시장을 10분도 더 걸렸습니다.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조금 내려온 길을 올라가면 바로 세병관 가는 길이 나옵니다.

코앞에 있다는 말이지요. 퍼뜩 세병관이 눈에 띄지 않아 의아해했는데 지금 그 주변이 죄다 공사중이라 칸막이 처리가 되어 

있어 잘 보이지 않았던  것이였습니다. 





서까래가 드러난 연등천장을 하고 있습니다

단청은 다시 칠하려고 손질을 해 둔 것일까요?





우물마루 바닥에 중앙 뒷면이 약간 높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천장은 격자무늬 이것을 소란반자라고 하네요

분합문이 달렸습니다. 저곳을 사령관이 앉는 곳인가 봅니다. 역시 계급은 높고 볼 일입니다.

궐패를 모셨던 공간이라고 하는데 죄송합니다 사령관님 ^^


*궐패: 조선 시대, 각 고을의 객사(客舍)에 모셔 두는 ‘闕’ 자를 새긴 나무패를 이르던 말. 

          임금을 상징하는 것으로, 매달 초하루와 보름이면 고을의 원(員)이 여기에 절을 하였다.


이러 뻥 뚫린 곳에서 온돌도 아닌데 어찌 지냈을까요? 옛사람들은 추위도 잘 참았을까요?





뒷편에서 보니 현판이 앞 시야을 가립니다. 현판이 좀 크긴 하네요

한무리의 관광객들이 이 현판을 보면서 각각 한마디씩 합니다


"이야 진짜 크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현판이라쿠던데"


정말?






긴 겨울을 마감짓는 듯한 따뜻한 햇볕이 세병관 마루위로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해바라기 하면서 앉으면 정말 몇십분은 그냥 

졸지 싶었습니다. 바람도 잔잔하고 기온도 높은 날입니다.


'신발을 벗고 올라가시오'


세병관은 마루에 올라가 볼 수가 있습니다. 





공사장 가림막이 시야를 팍 가립니다. 깨금발로 폴짝폴짝 뛰어서 넘어다 봅니다. 바다를 상상해 봅니다

통영에서 제일 좋은 자리라고 아니까 더더욱 어떤가 궁금했는데 시원스레 볼 수가 없어 아쉽습니다.






돌아나가는 발걸음이 쉽지 않습니다. 문화해설사님을 졸라서 같이 돌아볼 걸 그랬나 싶기도 한데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고

관광지라 들러보러 오는 사람들이 끊이지는 않습니다. 혹여 문화해설사님이 따라 오면 귀동냥 해보려 했는데 그것도 물건너

갔습니다. 자꾸 뒤돌아봅니다.





세병관은 전면에 9개 측면에 5개의 기둥이 있고 50개의 기둥이 있습니다.

저는 일일이 다 세어 보았습니다  50개의 기둥이 맞습니다.


느리게 넘어가는 겨울 해가 기둥사이사이를 죄다 훎고 있습니다.

한무리의 다른 지방 어르신들 세병관을 보시고 난 감상평을 하시면서 나오십니다.


"저 기둥은 최근에 바꾼기라"


"그라요 "


"저 벌어진 틈은 잘 몬 말리가꼬 그리되기라"


"그란데 저 우에 새까리는 왜 저렇댜"


"칠을 하다가 말았네 저짝 공사한다고 돈이 모지랐나부네"


"허이고 그래도 칠을 지대로 해야 되제 조래 두면 되긋나"


"벨시리 볼 꺼도 엄네 더 볼 때 없제!"


다시 돌아봅니다.

저 기둥들 최근에 바꾼걸까? 그때 그대로 인 것일까?

어디 물어볼 곳도 없고 답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