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여사의 제3의 활동/아름다운 내나라 여행

산책하기 좋은 공원으로만 알았던 그 곳 진주성 그리고 진주대첩이야기

하늘위땅 2013. 6. 19. 08:36

마산에서 가까운 진주.


경전선 느린 완행 열차를 타고 가면 온 몸 뒤틀리지 않을 시간에 도착을 하게 되는 진주역에 내려 버스를 타고 가던가,

느리게 걸어서 진주성까지 나들이 삼아 가면 좋을, 잘 다듬어진 공원이라고만 늘 생각했었던 진주성입니다.


봄 날에 가도,

여름 초록이 터질듯한 날에 가도,

진주성내를 덮고 있는 낙엽의 축제의 날에 가도,

앙상한 나무가지가 바람에 날리는 겨울에 가도 좋은 그 곳 진주성을 다시 봅니다.


경전선 느린 기차가 섰던 그 역사는 문이 닫혔고 새로 생긴 역사는 너무 멀고 외진 곳에 있어 버스를 타고 갑니다.

마산에서 진주까지 30분에 한대씩 시외버스가 상시 대기중입니다. 이른 새벽까지 심야버스도 운행을 하니 

언제라도 맘만 먹으면 훌쩍 여행 아닌 여행을 즐길수 있는 곳에 진주가 있다는 것은 복이라고 해야할까요?


우리 국보 건축물 찾아보기 위해 나섰던 길에 더불어 알게 된 내용을 확인도 할 겸 잠시 내려서 진주성을 요모조모 봅니다.

예전에 볼 때도 진주성이였고 지금도 그렇는데 바라보는 눈길이 다릅니다.

눈으로 머리속에 남는 것도 다르네요. 깊고 진하다고 해야할 지 뭐라고 해야 할 지 여튼 다릅니다.

현장학습이 곁들여 지니 온전하게 뿌리를 내리는 느낌이랄까( 얼마나 오래 갈지는 본인도 모르겠습니다 )






사진 찍는 사람들이 이런 사진을 많이 찍더군요.

허접하고 오래되 너덜거리는 쪼매난 저의 디카가 용을 썼음에요 화질이 구립니다.

곧 이별을 해야 할 시간이 다가옴을 느끼는데 왠지 놓아 버리기 싶지 않아 아직도 옆에 끼고 있습니다.


하늘 빛이 강속으로 녹아 들어 하늘이 강인지 강이 하늘인지 서로가 서로를 탐하고 있습니다.

바람은 싸~ 아하게 콧끝을 때리니 기침이 나옵니다.


이런 풍경을 앞에 두면 "아! 좋다!"  아주 늙은 사람같은 감탄이 나옵니다.


"이런 풍경 저번에도 봤자나 새삼스럽게 머꼬 촌시럽다"


"그땐 그냥 저리 있는갑다 싶어 눈만 좋쿠나 하고 말았는데 지금은 쫌 달리 입도 좋다고 하는 걸 어짜라고"


핀잔을 들어도 찬바람이 어서 자리를 떠나라 압박을 가해도 한참을 진주성을 강건너에서 구경합니다.

추운날 강변에서 운동을 하는 많은 사람들은 늘 익숙한 것이라서 그런가 관심도 없네요





서둘러 다시 강을 건너 옵니다.

진주시민이 아니라 소정의 입장료를 지불합니다.


촉석루 아래에 서 봅니다

촉석루는 남장대라고도 하지요. 이곳은 진주목사(牧使: 지역 군사령관을 말합니다 흔히 떠오르는 목사가 아닙니다 하하) 군지휘소입니다

근데 왜 저도 그냥 흔히 있는 누마루였다고 알고 있는 것인지 에혀 무식하면 제대로 볼 눈을 막아 버리는 것이 맞는 말이군요

강에 바위가 솟아 있는 누각이라서 촉석루라고 한다는 건 아실것이고


1365년 창건했다가 전쟁때 소실 된 것을 1960년에 중건을 했다고 합니다


중건 [重建]

1) 절이나 궁궐 따위를 보수하거나 고쳐 지음  2) 낡거나 부서진 것을 수리하거나 고쳐 짓다

(이럴땐 한자 공부 좀 열심히 해 둘 걸 후회합니다. 언어가 풍부하게 살아 움직임을 느낄수 있을텐데)


이 촉석루를 알고 있는 건 논개 때문임을 밝힙니다...

임진왜란때 진주성 함락을 자축하는 자리에 나간 논개가 가락지를 열개 끼고 왜장을 안고 뛰어 내린 곳이라는 거

논개는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최경회의 부인이였지요. 기생이 아니라. 진주성 함락으로 최경회가 자살을 하였고 

복수를 위해 논개가 뛰어 들었던 사건이였답니다.

(왜 이런 이야기를 지금에서야 듣는지 아무도 해주는 사람이 없었을까 혹 알 생각을 안했을까요? 부끄부끄

 여기서도 '마음' 에 관한 것이 나오네요. 마음..곧은 마음 절개,충성스런움, 그 마음을 지키기 위한 행동 등등)




[출처] 진주박물관|작성자 이용재



초록잎이 가득할 때 오면 얼마나 이쁠까 생각하니 가슴이 설렙니다.

박물관에 가면 진주성의 원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성안의 너른 평야와 기름진 땅을 상상해 볼 수 있더라구요.

풍요한 진주성 그래서 고집과 타협없이 꼿꼿한 진주사람을 이해하게 됩니다.(박물관에서 꼭 보시길요)





풍덩

왜장을 안고 물속에 뛰어 든 논개의 맘을 알 듯 모를 듯 물이 살짝 일렁이는 듯 착각을 합니다.


"니라면 그때 그랬을수 있겠나?"


"옴마야 지금 생각으론 엄두도 안나지 죽는기 무섭잖아 그때라면 논개와 같은 맘을 먹었을 수도 있겠지"


"글켔제. 그 시절이였더라면 우리도 그렇게 했을꺼다 그제"


"흐흐 아마도 그랬을꺼다 우기야지 덜 부끄럽구로 ㅋㅋ"





허접한 저의 디카도 제대로 힘을 냅니다.

이런 하늘 빛을 너무 좋아하는 저의 디카. 흑백사진을 연출하고 마는군요.

논개위패를 모신 의기사가 살짝 보이네요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전라도의 교두보인 진주성을 4만명의 군사를 보내 치라고 합니다.

3천명의 군사로 우리의 김시민 목사는 결사항전을 합니다. 성안의 백성 2만과 함께 뜨거운 물을 끓여 부어가면 왜군을 이깁니다.

우리 김시민 장군은 싸움이 끝난 뒤 성을 둘러보다 시체속에 숨어 있던 왜군이 쏜 총에 세상을 떠나셨다고 합니다.

아! 영웅은 이렇게 허무하게 세상을 떠나는 모양이에요.


여기서 문제 하나

임진왜란의 3대 대첩은 무엇일까요?


권율의 [행주대첩]

이순신장군의 [한산대첩]


그리고그리고 진주성대첩입니다.








촉석루.. 여름날 저 누각에 누워 강바람 맞으며 낮잠 자는 거 참으로 행복합니다.

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 

경포대의 여름 낮잠도 좋긴 했지요.(지난 여름 휴가때 즐겼기 때문에 압니다)





유난히 쌍쌍 연인들이 데이트를 합니다.

운동을 즐기는 시민들도 삼삼오오 다니고 차근차근 둘러보는 사람도 있고요.


그 다음해 다시 복수전을 하러 왜군들이 진주성으로 몰려왔답니다.

10만명을 이끌고 들이닥쳤답니다. 완전 무장 준비를 철저하게 하고 닥친 왜군을 이길수가 없습니다.

창의사 김천일은 아들을 안고 남강에 뛰어듭니다

창의사(倡義使) 임진왜란 때 의병(義兵)을 일으킨 사람에게 주던 임시 벼슬


이때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최경회 장군도 투신을 합니다. 전쟁에서 지면 장군들은 대부분 이렇게 자살을 해야하나봐요.

그 부인이였던 논개가 복수전을 펼치게 됩니다.





공북문입니다  진주성 북문으로 일제강점기 때 철거된 걸 2002년 중건했습니다

拱北. 충성을 맹세한 신하가 임금이 있는 북쪽을 향해 공손하게 예를 올린다는 뜻이랍니다.






김시민 장군의 동상이 아주 멋집니다.

뭐라뭐라 호령을 하는 듯 합니다.


예 장군!





영남 포정사 문루.

포정사布政司는 바른 정치를 펼치는 지방 장관의 사무실을 말한답니다.

현판은 망미루望美樓. 임금을 보고 싶어한다는 뜻인가요?






저기는 북장대 여기도 군지휘소랍니다.

신발을 벗고 올라가면 진주 구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사진 오른쪽 아래 있는 저 돌들은 뭘까요 진주성 가시면 알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는 돌들입니다.




아 그리고 보니 옛날 테레비 프로 '느낌표'에서 모금을 해서 사온 것이 김시민 장군에 관련된 것이였는데.

김시민 장군의 공신교서였네요. 1억2천만원을 모금해서 일본에서 일본 고서점에서 사왔답니다. 나쁜 사람들.

진주박물관에 영구 보관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있을까요?


공신교서는 ’공을 세운 신하에게 임금이 상을 내린 기록을 담은 문서‘로 가로 225센티, 세로 37.2센티의 비단 두루마리입니다.






문이 굳게 닫혀 있는 진주성내 청계서원입니다 퇴헌 정천익 선생을 모신 곳이지요.

흥선 대원군이 훼철(서원철폐령으로)한 것을 1993년 중건했습니다.

문익점의 장인이라네요


왜 못들어가게 문을 걸어 닫았을까요?





진주성은 진주의 역사와 문화가 집약되어 있는 진주의 성지(聖地)입니다. 본시 토성이던 것을 고려조 우왕 5년(1379)에 진주목사 김중광(金仲光)이 석축하였답니다. 성의 둘레는 1.7㎞ 두어바퀴 돌면 운동되기 좋은 거리지요.





1977년 박정희 대통령이 진주성을 방문해서 보니 흔적도 없는 성곽과 무허가 판자촌을 보고 정비를 하라고 했다네요.

성곽 복원도 하고 정비도 하고 진주박물관도 건축하게 됩니다.

진주박물관을 설계하신 분이 김수근 건축가인데 우리 지역 마산양덕성당을 설계하신 분이시네요.

늘 지나치면서도 좀 특이한 건물이다 생각했는데 역시 .


지붕에서 눈을 뗄수가 없네요. 기와지붕 6번접은.

야산을 파고 박물관을 들여 앉혔다고 합니다. 들어가면 밖에서 보는 것고 다르게 아주 넓습니다.

입장료 없이 공짜로 둘러볼 수 있습니다.

가야박물관이라는 이름을 김해가야박물관에 밀려 줘버리고 임진왜란 역사박물관이 되었답니다.






펄럭펄럭 깃발이 겨울 바람에 힘차게 펄럭입니다.


1시간만에 후딱 돌아보고 나갔던 때가 조금 부끄러워집니다.

3시간을 돌아도 좀 더 봐야하는데 싶었지만 다른 곳이 기다리고 있으니 쩍쩍 들러붙는 발걸음을 옮길수 밖에 없었습니다.

꽃피는 봄 날 책한권 들고 진짜 휴식을 하러 와야겠습니다.

봄 바람에 살짝 졸기도 하고 책 한권 후딱 읽어 버리지 않겠습니다.


역시 오늘도 우리의 스타 "이용재'님께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요즘 인문학적 집짓기에 온 에너지를 쏟아 붓고 계시던데 늘 응원합니다.

1호집이 완성되면 꼭 구경하러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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