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여사의 제4의 활동/추억의 빼다지

네모난 도시락에 밥 싸줘!

하늘위땅 2011. 6. 21. 11:39

국민학교(그때는 이렇게 불렀다) 3학년때 처음으로 도시락을 싸서 학교에 갔었다.

저학년때는 오전수업만하고 집으로 돌아가 아랫목에 있는 밥으로 점심을 먹었고

3학년 일주일에 딱 하루 목욜은 특활시간이 있어 오후늦게까지 수업을 했던것 같다.

처음 벤또(어릴적 부르던 그대로)를 싸 가는날

언니 오빠 벤또만 싸 보내고 3학년짜리 내게는 돌아올 밥이 없었다

그래서 징징거리다 엄마한테 쥐어박혀서 학교로 향했다.

가는 내내 밥이 없어 창피해서 어쩌지

굶어야 되는데 배고플텐데 이런 생각들로 눈물 질질 짜며 등교길

발걸음이 무거웠다.

 

그래도 학교 생활은 재미있었고

수업에 흠뻑 빠져 있었던 3시간무렵

교실 뒷 문을 드르륵 미는 소리가 들렸다..

다들 고개를 돌려 보니

이런 울 엄마 아닌가?

화장까지 하시고 왠일이람?

 

'갱미가 벤또를 안가져가서..'

 

보자기에 싼 따뜻한 벤또를 선생님께 건네고 총총 가시는 울 엄마

 

..아니 네모 벤또가 아니잖아..

 

동그란 찬합통 밥과 반찬을 넣어서 보내신 것이다

물론 밥은 금방해서 따뜻할 것이고

반찬도 새로 서둘러 했을 것이였다.

아침의 그 뽀루퉁한 감정이 더 창피하게 떠올랐다

 

양 볼이 발갛게 달아올라

선생님이 건네 주시는 도시락 보자기를 고래를 숙인체 휙 낚아채듯 자리로 돌아왔다.

 

 

 

드디어 점심 시간 종이 울리고

학교에서 처음 먹어보는 도시락인지라

다들 무슨 반찬일까 자랑하듯 책상위에 꺼내놓았다

 

네모 도시락이 아니어서 창피한 마음에(그때는 네모난것만 도시락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슬그머니 두껑을 열고 반쯤 덮어 둔채 반찬을 보았다

따뜻한 밥과 갓 조린 어묵과 김치와 멸치볶음이 있었다.

와~ 어묵반찬은 정말 맛있었고

따뜻한 밥과 함께 먹는 김치는 완전 감동이였다.

 

반찬통이 따로 없이 담겨져 누가 볼새라 덮어놓고 먹었지만

그 많은 양의 밥과 반찬을 싹 다 비우고

운동장 한켠의 수도가의 물까지 벌컥벌컥 먹었었다.

 

그 뒤 몇번의 동그란 찬합 밥을 먹고 난 뒤

네모난 양은 도시락이 내것으로 돌아왔고

공부는 어영부영 하면서

그 도시락은 얼마나 잘 챙겨먹었던가.

 

가끔 도시락을 싸가지고 가지 못할때는

(전날 잘못을 하여 혼이 나거나, 육성회비를 가져가지 못해 떼를 쓰다가 쫓겨서 등교를 하면)

수돗물로 배를 채우고 모래먼지 날리는 운동장에서

고무줄 놀이도 신나게 했었는데...

 

그 시절 도시락은 또 다른 사회생활이 주는 재미였고

행복한 순간이 아니였나 ..싶다.

지금도 도시락을 쌀때면 집이 아닌 밖에서 그 도시락을 먹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설렘이 있어서 참 좋다.

 

봄이 더 깊어지기 전에 도시락을 싸서 나가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