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여사의 제4의 활동/추억의 빼다지

가슴 떨렸던 깻잎 서리

하늘위땅 2010. 7. 3. 13:20

 

 

어릴적 여름은 풍성함 그 자체였다.

동네에서(마산시 회원동 384번지) 조금만 벗어나 무학산 자락으로 파고 들어가면

앵지밭골 계곡 양쪽으로 지천으로 널린 것이 들깨 밭이였고

호박밭이였고 풋고추며 상추며 ...

복숭아 밭도 있었고 산딸기 밭도 있었던 것 같다(기억이 나는 한)

 

회원천 양쪽으로 줄을 이어 선 작은 집들 사이사이로 아무렇게나 자라서 초록 잎을 벌려 놓은 호박이며

가지며 오이는 장난질에 늘 괴로움을 당했지만 그렇다고 누구하나 그것을 가지고 도둑으로 몰려

눈 부라리며 뭐라하지 않았기에 우리들의 서리 놀음은 한 동안 계속 되었었다.

그렇다고 무분별하게 농작물을 심하게 못쓰게 만들거나 한곳에서 싹쓸이 했던 적이 없었기 때문에

다소 화를 내시는 분들도 계셨지만 그냥 쪼매씩만 해라는 말로 나무라는 것에 그쳤었다.

 

그러던 어느날,

우리는 다소 무모한 서리를 하기로 결정을(언니의 강요였던가? 용돈이 필요했던가?) 했다.

제 키 높이만큼 자란 깻잎을 서리해서 시장에서 팔아보자는 엉뚱한 결정을 말이다.

그냥 우리 장난의 대상이였을때는 우리 입만 즐겁게 해 줄때에는 재미있는 놀이였는데

그것을 돈으로 바꿀수 있는 대상이 된다고 생각하니

서리 가기전부터 가슴이 벌렁거렸고 오금이 저렸고 하면 안되는 것 아닌가 엄청 갈등을 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누구 한사람 하면 같이 덩달아 해야 되었던 그때의 놀이문화를 보자면 나 혼자 안해! 라고 발을 뺄수도 없었다.

 

거사의 그날 한 여름 땡볕을 이고 들깨밭으로 걸었다

볕에 그을린 얼굴들에선 다소 긴장감이 흐르고 주인한테 들키면 줄행랑칠 생각을 정리하면서

도착한 그 곳에서 우리는 이리저리 눈치를 살펴가면 깻잎을 한장씩 띁기 시작했다.

옷 앞섶에 딴 깻잎을 그냥 눌러가며 서리를 했다.

 

다행히 주인에게 들키거나 어른들의 제지도 받지 않았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우리들은

서리해 온 깻잎을 한데 모아서 시장에서 파는 것처럼 단을 만들어 묶었다.

좀 크고 양도 많이 해서 하나씩 묶었더니 제법 많은 양이 나왔다.

이제 그것을 시장에 내다 팔면 우리손에는 '돈'이란 것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니

서리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은 어느새 저 멀리 사라지고 돈으로 뭘할까 그 생각에 흥분까지 했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깻잎을 한묶음도 팔지 못했고 그렇게 원했던 돈도 가져보지 못했다.

시장에 펼쳐놓고 팔 용기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였다.

결국 그 깻잎을 집에도 가져오지 못하고 회원천에 내 던지듯 버리고 말았다.

그것을 집에 들고 갔다가는 엄마한테 복 날 개 맞듯이 얻어 터지고 집에서 쫓겨날 것을 알기에

아깝지만 반나절 공을 들인 우리들의 깻잎서리 작전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