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여사의 제4의 활동/추억의 빼다지

내 유년의 여름 (2) - 호롱불 아래서도 할 건 다하더라

하늘위땅 2010. 8. 23. 10:00

세상은 모두 다 똑같은 줄 알았다 어린시절 그때는. 걸어서 갔다 올 수 있는 거리의 세상만 다 인줄 알았고 다른 이동 수단을 이용해 멀리 간다는 건 생각지도 못했기에 내가 아는 것과 보는 것은 온 세상에 똑같을 거라고 알고 있었다.

언니 오빠를 따라 외가에 처음 갈때의 그 흥분은 감히 지금 해외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도 비교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엄마 아버지 없이 우리들끼리 차를 타고 먼 곳을 간다는 그 사실은 두려움과 함께 호기심과 기대감을 한껏 갖게 했고 몇날 몇일 잠을 설쳐가면 손꼽아 기다렸었다. 부모 도움없이 동생들을 데리고 외가에 가는 언니 오빠가 참 대단해보였고 감히 넘볼수 없는 사람같아 보이기까지 했었다.

 

1시간 완행열차를 타고 10리 길을 걸어 도착한 외가는 사뭇 도시와 다른 느낌으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었다.

 

 

 

 

 

 해질무렵 시골 들판은 어린 내 눈에도 참 아름다웠고 입을 헤 벌리고 붉게 타는 서쪽 하늘을 넋을 놓고 보기도 했었다.

더구나 온 몸의 세포를 섬세하게 자극했던 나무 태우는 냄새와 연기가 하늘로 오르는 모습은 뭐라 말 할 수 없는 감정을 만들어 냈다.

 

집집마다 피어오르는 연기

서둘러 저녁을 준비하는 바쁜 손길들을 보지 않아도 느껴졌고 엄마 아버지가 절실하게 그리워지는 시간이기도 했다.

한 낮의 더위는 이글거리는 해가 떨어지면 바로 선선했고 신선한 공기는 사정없이 페부로 밀려들어와 아~ 좋다하는 느낌을 맘껏 느끼게 했다.

 

아직 어둠이 밀려 들기 전 저녁 먹어라는 외숙모의 고함에 노느라 몰랐던 허기를 느끼고 언니 오빠들을 따라 종종거리며 외가로 뛰어갔었다.

단촐한 시골 밥상이라지만 커다란 밥 그릇에 소복히 담긴 밥에선 고소한 시골 밥 냄새가 잔뜩 묻어났고 밥 한쪽에 얹어 찐 된장찌개는 일품이였다.

 

그러다 어둠이 깊어졌고 세상이 캄캄해졌다.

 

"할매 불 케라"

 

우리는 당연히 전기불이 들어올거라 생각했었다.

거의 어둠이 방 깊숙히 들어올때 쯤 한쪽에 밀쳐져 있던 뭔가 가지고 와서 성냥으로 불을 켜시는 것이 아닌가.

 

 

 

"할매 그기 불이가?"

 

"그래 호롱불이다"

 

"전기다마에 불 안들어오나?"

 

"그런기오데있노 "

 

아이쿠 저 호롱불은 넘 어두웠다.

그 주변만 희미하게 밝힐 뿐 조금만 떨어지면 캄캄한 어둠이 있을뿐이였다.

마당을 가로 질러 있는 화장실엔 어찌 갈지 갑자기 걱정이 되었고 도심에서보다 더 깊고 짙은 어둠에 정말 무서워졌다.

외가는 동네의 맨 뒤 산쪽으로 가장 가까이 붙은 집이였고 마루에 서면 주변에 전기불도 아닌데 뭔가 작은 불들이 왔다 갔다 했고

밤 짐승 소리가 들려서 문을 열고 밖에 나가는 건 감히 할 수 없는 일중에 첫번째를 차지할 정도였다.

 

부엌일을 끝마친 외숙모는 그 호롱불아래서 바느질을 하셨고 외삼촌은 농사일지를 써셨다.

할머니도 뭔가 일을 하셨고 우리는 방학책조차 꺼내지 못하고 어둠에 익숙해지기를 기다려야 했다.

 

낮에 흘린 땀으로 물을 잔뜩 마신 뒤라 화장실 생각이 간절했던 우리는 감히 화장실 갈 생각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문을 열고 마루에만 서면 서늘한 찬 바람과 함께 풀벌레, 산짐승의 소리가 공포감을 밀고 들이닥쳐 사색이 되어 방안으로 다시 들어가야했었다.

오줌보가 터질 직전에서야 이종사촌의 도움으로 컴컴한 마당을 가로질러 볼 일을 보고 후딱 뛰어 방으로 들어왔었다.

 

그 시절 그 어둠 속에서 하늘의 별은 수없이 쏟아질 듯 반짝이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별이 후드득 가슴으로 눈으로 사정없이 내리고 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