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여사의 제4의 활동/추억의 빼다지

내 유년의 여름(1) - 한 여름 땡볕 아래 고추밭 풀 뽑기

하늘위땅 2010. 8. 21. 12:16

올 여름 더위는 정말 견디기 힘들만큼 지치게 한다.  가게를 열고 첫 여름을 주방 불 앞에서 보냈지만 그닥 더운 것 같지 않아 이 정도면 한 여름에도 불 앞에서 견디겠다 했는데 올 여름은 유난히 더운 것 같다. 지나치게 흐른 땀으로 다소 기운도 떨어지고 입맛마저 떨어지니 어서 여름을 보내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고3 아들 녀석 방학도 얼추 끝나가고 있고 처서가 코앞이니 곧 시원해지겠지?

 

내 유년의 여름은 언제나 항상 늘 똑같은 모습으로 기억된다.

뜨거운 햇볕아래 고추밭에서 풀 뽑기 싫어 엉뚱한 짓하는  내 모습 그리고 동촌 저수지의 물 놀이 모깃불...

 

외가는 진주시 진양군 이반성면 하곡리 동촌부락에 있다. 새밭골이라는 별칭이 있는 외가는 꽤나 외진 깊은 곳에 자리한 동네였다.

 

 

 ▶촌 역에 내리면 노란선을 따라 쭉~ 화살표 지점에 있는 외갓집

 

 

 

 

여름방학이 시작되면 우리 남매들은 어김없이 마산발 진주행 완행열차에 몸을 실었고 북적이는 사람들 틈에 끼어 그것도 여행이라고 설레면서 외가나들이를 좋아했었다.

 

 

짐 보따리를 꾸려 집 근처 북마산 역에서 진주쪽으로 가는 기차를 타고 평촌 역에 내렸다.

한 여름 땡볕은 매미소리와 함께 징그럽게 뜨거웠고 바람은 건조하게 불어왔었다.

미류나무 가로수길을 우리 3남매 혹은 4남매는 걸어서 골짜기에 있는 먼~ 외가에 갔었다. 그늘도 없는 10리길을 어린 걸음으로 1시간 이상을 걸어서 말이다.

외가에 가져갈 선물 보따리 속 과자도 도넛등을 하나씩 빼 먹으며 나무 그늘에서 쉬기도 했었다.

 

여름 손님은 정말 반갑지 않다고 했나?

시골 냄새 물씬 풍기는 외가에 도착을 하면 외삼촌 외숙모 그리고 우리를 유난히 싫어라 했었던 외할머니가 덜 반갑게 우릴 맞아주었고

1남2녀 외사촌들은 많이 반갑게 우리를 맞아주었다.

 

방학숙제고 뭐고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여름방학 내 외가에 머물면서 하루종일 이산 저산 이골짝 저골짝으로 외사촌들과 마을 동무들과 놀러다니기 바빴다.

도시에 살고 있어(마산도 그닥 도시라고는 볼 수 없었던 시절이였지만) 시골 생활이 주는 재미는 매일매일이 서프라이즈 였었다.

 

그렇게 맨날 놀기만 하는 우리들이 내심 귀찮았을 외할머니는 가끔 그 미움을 표현하고는 했었다.

어린마음에 그것이 눈치주는 것인줄도 모르고 안한다고 내빼거나 숨어버리기도 했었지만 사촌언니 손에 이끌려 어쩔수 없이 외할머니가 시킨 일을 하기도 했었다.

그 중에서도 여름이면 언제나 항상 늘 생각나는 것이 고추밭 풀 뽑기였다.

점심을 먹고 난 가장 더운 시간에 불 뽑기를 시키는 외할머니의 마음을 그땐 잘 몰랐다

 

 

 

 

 

우리 형제들과 외사촌들과 함께 집 뒤로 난 길을 따라 10여분 오르면 나왔던 고추밭은 그늘 하나 없었고 그냥 걸어도 이마엔 땀이 송글송글 맺였다.

외사촌 언니는 손도 빠르게 풀을 뽑았지만 우리들은 하기싫어 그 자리에 앉아서 뽑는 시늉만 했었다.

등으로 내리쬐는 태양은 이글거리면 등을 파고 들 기세였고 앉은 자리엔 바람마저 들어오지 않으니 그냥 있어도 땀이 줄줄 흘렀다.

그래도 할머니 명령인데 안하면 저녁밥을 먹지 못할 거라는 걱정을 하면서도 밭 한고랑도 다 하지 못하고 어영부영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오후시간을 땡볕속 고추밭에서 죽이고 해질무렵 태양을 가린 산그늘은 그렇게 반가울수 없었다.

개울에서 대강 얼굴이며 목이며 땀을 씻어내고 외가로 돌아가면 군불 지펴 밥 하는 냄새가 뱃속을 요동치게 했었다.

 

그렇게 유년시절 여름은 늘 고추밭 고랑에서 등으로 태양을 고스란히 지고 있었던 그 시간에 멈춰있다.

그땐 하기 싫은 일은 죽어도 안했던 참 게을렀던 아주 이기적이였던 꼬맹이였던 것이다.

그때처럼 태양은 도시를 녹일 듯 화를 내고 있고 콘크리트 건물안 그늘아래 있어도 등은 후끈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