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여사의 제3의 활동/절 집 기행

봄의 한가운데 비를 맞으며 23년만에 다시 가본 하동 쌍계사

하늘위땅 2012. 4. 21. 10:06

봄비가 오는 날.

봄나들이겸 꽃구경 가야겠는데 이웃 진해는 그닥 가고 싶지 않고 딱히 떠오르는 곳은 없고

이리저리 검색을 하다보니 하동 쌍계사 십리벚꽃길의 꽃이 딱 만개를 해서 절정을 이룬다는 정보 입수

바로 행동 돌입.


우산에 우의를 챙기고선 잔뜩 흐리기만 한 마산을 출발

진주에서 쌍계사로 가는 직통 버스를 탔다

(8시10분발 진주)


진교 하동읍과 화개를 거쳐 쌍계사까지 2어시간 정도 

차들이 엄청 밀리고 평일임에도 꽃 구경 나온 차량들로 도로는 주차장

넘치는 인파들로 인해 쌍계사도 어김없이 부처님오신 날을 방불케 했다.


비는 보슬보슬 내리고 있는데..





미리 준비한 우산을 펼쳐 들고 20년 더 전에 왔던 쌍계사의 기억을 더듬었다.


23년전 같은 지점에 근무를 하던 직원들 몇명과 함께 쌍계사엘 왔었다.

쌍계사가 목적이 아니였고 등산이 이유였는데 토요일 반일 근무를 끝내고 버스를 갈아 타고

어두워진 이른 저녁무렵 쌍계사 입구 도착을 했고 민박을 구해 다 늦은 저녁을 해먹었다.


남자직원 두명과 여자직원 서너명(기억이 가물가물)은 밤 늦도록 이야기꽃을 피웠고

새벽일찍 일어난 잘생긴 총각 남자직원의 준비한 아침을 먹고

산행을 위해 길을 나섰는데.........




몽글몽글 흰 벚꽃이 중간에 박혀 있으니 봄인가 싶은 섬진강 상류

내려앉은 안개가 오늘 날씨를 미리 알려주는 듯

축축한 공기가 호흡 할 때마다 폐로 깊숙히 찌르고 들어온다.


아! 또 날을 잘못 잡은거임???


쌍계사 오르는 길 

반듯하게 잘 포장된 길이다









유난히 많이 보이는 젊은 연인들

우산을 나란히 쓰고 가는 모습이 어여쁘오..


길가에 달린 저 연등은 사철 달아두는 모양일세

어디가나..참 보기에는 안좋은데...




쌍계사 일주문                                                                      금강문


쌍계사는 일주문, 금강문, 천왕문을 거쳐 경내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어 있었다.


  

기억속에서 꺼집어 낸 쌍계사 일주문과 일치하는 곳이다.

근데 왜 넘어질 듯 사진이 찍혔지

비스듬히 찍었나?


* 일주문


절의 입구에 세워져 있는 일주문은 속세를 떠나 부처의 세계로 들어가는 첫 번째 관문이며, 항상 한마음을 가지고 수도하고 교화하라는 의미의 상징물이기도 하다. 양쪽에 기둥을 하나씩 세워 지붕을 받치고 있는데,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의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배치되어 있는 다포식이다. 앞면에는 3구씩·옆면에는 2구씩 배치하여, 처마가 매우 화려하며 공포로 꽉 차 있는 듯하다. 기둥 앞뒤에는 보조 기둥을 두어 지붕을 안전하게 지탱하고 있는데, 보조 기둥 머리 부분에는 연꽃무늬를 장식하였다. 일주문에는 ‘삼신산쌍계사’‘선종대가람’이라는 두 개의 편액이 걸려 있는데,이는 근대 서화가로 이름을 떨친 해강 김규진(1868~1933)이 쓴 것이다.화려한 다포계 후기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는 일주문이다



*금강문


금강문은 일주문 다음에 통과하는 문으로 천왕문과 함께 절에 들어오는 공간으로 불법을 수호하고, 속세의 더러움을 씻어내는 의미있는 장소이다. 이곳에서는 금강역사를 모시고 있는데 금강역사는 불교를 수호하고 악을 벌하는 천신으로 문의 왼쪽에는 부처님을 늘 모시는 ‘밀적금강’이 있고 오른쪽에는 ‘나라연금강’이 있다. 쌍계사 금강문은 신라 문성왕 2년에 진감국사가 지었고, 인조 19년(1641)에 벽암선사가 다시 지었으며, 현재의 건물은 1979에 수리한 것이다. 건축양식은 앞면 3칸·옆면 2칸으로 1층이다. 지붕은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단순한 맞배지붕이다. 가운데 칸은 개방하여 통로로 사용하고, 양 끝 칸은 벽으로 막아서 금강역사를 모시고 있다. 문 앞에는 벽암스님이 쓴 ‘금강문’이란 현판이 있다.


*천왕문


쌍계사 천왕문은 숙종 30년(1704)에 박봉스님이 지었고 순조 25년(1825)에 고쳤으며, 현재의 건물은 고산스님이 1978년에 다시 수리한 것이다. 사천왕을 모시는 문으로 사천왕은 부처님께 의지하여 불법을 수호하고 수도하는 스님과 선량한 사람을 돕는 4명의 수호신이다. 동주를 다스리는 지국천왕, 서주의 광목천왕, 남주의 증장천왕, 북주를 다스리는 다문천왕이 있다. 앞면 3칸·옆면 2칸의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집이다. 가운데 칸은 개방해서 통로로 사용하고 있고, 양 옆칸은 벽으로 막은 후 사천왕상을 모시고 있다. 사천왕상은 나무로 만든 것으로 조각 솜씨가 뛰어나다.





쌍계사 도량 안내도










8층석탑과 팔영루를 지나면 대웅전 마당에 닿을 수 있다.






팔상전 가는 길에 비를 맞고 선 목련꽃이 빛이 나누나

절 집 곳곳에 활짝 핀 목련이 봄의 기운은 한껏 불어 넣고 있었다.







이짝 담 너머도

저짝 담 너머도





정면 5칸, 측면 4칸 단층 팔작지붕의 다포계(多包系) 건물인 대웅전이다.


쌍계사는 독특하게 대웅전 영역과 금당영역으로 구분이 되어 있는 절이였다.




그래서 왠지 절 집이 좀 작다 싶었다

불일폭포 가려다 발견한 금당 아니였다면 궁금증도 없었을텐데..


귀가후 찾아보니 알게 되는 걸.





오래된 절 집이니 담벼락 조차도 이렇듯 나무인지 담인지 알쏭달쏭하게 어우러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벽과 일체가 된 나무 그리고 오랜 세월이 비껴간 기와위 이끼가 질척이지 않게 포장된 절 집 마당과 묘하게 대조가 되면서

봄 비 아래 젖기는 마찬가지다.


시간은 다른 것도 같은 것처럼 섞어버리고 마는구나






빗속에 젖기는 사람도 건물도 하늘도 산도 마찬가지.

같은 시간속에 비를 맞지 않는 것은 없으리..

빗줄기에 떨어지는 목련꽃잎 또한 마찬가지.






대웅전을 가운데 두고 마주 보고 선 나한전과 명부전이 있다.







뽀얀 꽃잎과 아직 옷을 입지 못한 나무도 비에 젖어 들고 있었던 날.






저멀리 산자락엔 안개가 옅게 오르고 있다.







오~ 찬란한 봄이여.

뭉클뭉클 기운을 불러 모으는 봄이여!







스님도 비를 피하시는 재주는 없으신 듯 우산을 들고 바삐 움직이신다.


명부전 옆에 자리한 마애불엔 다녀간 불자들의 염원이 담긴 동전이 반짝거리며 붙어 있었다.

어디에건 동전이 빛을 발하고 있노니.


큰 암석의 한 면을 움푹 들어가게 파내고 그 안에 불상을 돋을새김 하였다. 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높고 크게 표현되었으며, 옷은 두툼하여 옷주름이 무릎 부분 이외에는 뚜렷하지 않다. 왼손은 오른손 위에 올려 놓고 있어 무엇인가를 받들고 있는 듯하다. 스님으로 보일 만큼 매우 순박한 모습의 이 불상은 옷이나 손모양 등에서 특이한 점이 보이며, 고려시대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본래 약사여래불로 보이며,높이 135센티 폭90센티이다






불일폭포 가는 길을 찾아 오르다 보니 금당구역까지 오르게 되었다.


청학루 아래 달린 무청시레기 그리고 담 넘어 빼꼼 보이는 이 녀석은?

향기가 어찌나 진한지 발걸음을 돌리지 않을수 없었다.







생전 처음 본 이 녀석.

생긴 모양은 이상타

고운 색이며 꽃 가운데 까만 것은 뭔가.

이리보고 저리보고..

이런 꽃도 있었구나

화려한 듯 조신한 색이 묘한 향기와 어우러져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


도대체 너 이름이 뭐니?


두리번두리번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


나중에서야 이 꽃이 삼지닥나무꽃이라는 사실은 생전 처음 알게 되었다.

지금도 그 향이 코 끝에 맴맴돌고 있다.





불상이 입은 황금빛처럼 반짝반짝 고래를 내밀고 있는 삼지닥나무꽃.



쌍계사  http://www.ssanggyesa.net/  





불일폭포 들러 내려오는 길 정말 깜짝 놀라고 말았다.

경내를 가득 메운 사람들과 밀려오는 사람들 숫자에.

정말 부처님 오신날 불자들의 행렬인가 놀라 정도였다.


비도 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