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여사의 제3의 활동/절 집 기행

전나무 숲길을 지나니 이야기가득 마당에 당산나무를 안고 있는 부안 내소사

하늘위땅 2012. 4. 30. 12:00

또 오랜만의 문화유산답사기행에 합류를 했다.

앞차수 남해기행에 못간 아쉬움이 남았는데 아쉬움을 미련없이 버리게 만들었다.


208차 옛그늘 문화유산답기행의 마지막 기행지 부안 내소사

기억도 가물가물한 전나무 숲과 천년고찰의 품위있는 모습을 다시 볼 기회다 싶어 주저없이 동행을 했다.

생각보다 먼 곳이기도 해 여행을 가려면 1박을 해야할 곳이라는 생각에 늘 다음에 다음에 미뤘던 곳이지만

절집 탐방은 꼭 해보리라 했기에 약간은 설레는 맘을 가지고 있었다.


아련한 첫사랑을 그리워하는 맘처럼 전나무숲길과 이야기 가득한 절 집 마당을 내내 상상했는지도 모르겠다


다소 늦은 오후에 내소사에 닿았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주차장은 차들로 빼곡했고 사람들은 넘쳐났다

어디가나 알록달록 옷을 차려 입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예전에 왔을땐 본 기억이 없는 아무리 기억하려해도 떠오르지 않은 이 것은?

절 집 입구에 웅장하게 버티고 선 당산나무다

희안하지 않나?

절 입구에 당산나무라.

그리고 내 기억엔 왜 본 적이 없다고 검색안됨이라고 떠오르는건지.


전북 부안군 진서면 석포리에 있는 내소사.

백제 무왕 34년(633) 계율을 엄격하게 지키는 두타행을 하는 혜구(惠丘)스님이 세운 절이다. 

스님이 절을 처음 지을 때 “여기에 들어오는 모든 이 소생하게 하소서”라는 원력을 세우고 부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고 한다. 

내소사(來蘇寺)의 `내소’ 또한 `다음 세상에 다시 태어난다’는 뜻. 불교에서 다음 세상은 `미륵세상’. 평화로움이 가득 찬 세상을 뜻한다




당산나무와 맞주 보고 선 일주문으로 돌아서는 순간

어~ 이상하다 고 느꼈다.


문이 약간 비껴서 있는 것이다.





절의 관문인 일주문을 (혹은 매표소?) 지나면 전나무숲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런데 일주문과 전나무길의 방향이 조금 구부러져 일자가 아니다.

전나무길도 중간에 한번 더 비껴서 만들어져 있다.

이렇게 틀어지는 방향은 모두 시계 반대방향이다. 즉 왼쪽으로 계속 틀어 들어가는 것이다.

절로 들어가는 길은 절 집의 중심축과 틀어져 있고 절 입구에서 보면 탁 트인 느낌이 없이 작은 언덕이 보인다.

왜 비껴서 일주문을 세우고 길을 비껴서 만들었을까?


대웅보전 뒷산이 닭의 형상인데 반해 앞은 지네의 형상이라 지네와 닭은 상극 정면으로 만나지 못하게 하느라 그랬다고 한다.








닭이던 지네던 연한 초록이 덮여진 전나무숲길이 참으로 신선했다.

비록 많은 사람들에 의해 호젓한 산책은 아니였지만 긴 호흡으로 피톤치드를 맘껏 들이켰다.


가다보면 길 왼편에 전나무가 아닌 나무 한그루를 볼 수가 있는데 나무기둥이 크고 작은 옹이가 져서 참 못나게 

자라고 있는 나무를 찾아보시라.

왜 온 몸에 그렇게 옹이를 만들었는지도 생각을 해 보면 재미있는 산책길이 될 것입니다.





꽃놀이 시즌은 다 끝났지 않나 싶었지만 조금 위쪽 동네 산밑이라 그런가 활짝 분홍꽃을 터뜨린 나무 한그루

연한 초록잎속에 이쁜 색의 꽃을 보면서 다들 감탄을 절로 뱉는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는 하지만 이날은 꽃이 더 아름다웠다.


부처님 오신날  불을 켤 등속으로 마지막 봄의 향기가 들어가 가득 찬 듯 하다.





천왕문을 지나니 이건 뭔가 싶었다

눈앞을 가로막는 큰 나무와 건물이 있는 것이 아닌가?


정면으로 대웅전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약간 왼쪽으로 비껴서 계단을 오르니 1000년된 할매 당산나무가 떠억 버티고 섰다

당산나무를 약간 비껴 또 왼쪽으로 오르는 계단이 있다

천왕문을 지나 대웅보전으로 가는 길을 왼쪽으로 계단을 올라 가도록 배치되어 있었다.

내소사의 주산격인 능가산의 제일 높은 봉우리(관음봉)도 대웅보전에서 약간 왼쪽으로 있다고 하는데...


절집을 둘러싼 다른 산들과의 조화와 관음봉의 기운이 너무 크고 강해서 살짝 옆으로 비껴 앉혔다고 한다.






절 집 마당 가운데 위엄있게 선 1000년 된 할머니 당산나무다.

스님들이 마을사람들과 함께 당산제를 지낸다고한다


절집 마당에 당산나무라 참 의안하지 않은가

보도듣도 못한 일인데.


불교가 뿌리내리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민간신앙을 끌어안고자 했던 것이였나?


어디던 손을 모아 기도를 하는 곳이면 어김없이 동전이 저렇게 떨어져있다

도대체 동전을 던지는 것은 또 어떤 의미일까?


작년 여름 제주도 고인돌 문화공원 입구 석돌에 우리 일행들도 동전을 붙여 놓았는데

도대체 동전을 붙이는 행위는 어떤 의미일까?


동전과 기도 혹은 소원 무슨관계인가?






단청이 없는 대웅보전의 처마 밑은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보여진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담백하면서 단단함이 느껴진다고 해야하나..


대웅보전 현판 글씨는 두륜산 대흥사 현판을 쓴 원교 이광사의 글씨란다





봉래루와 설선당 사이로 보이는 대웅보전







기억속의 대웅보전은 왼쪽편에 커다란 나무가 있었던 것 같은데 그 나무에 다들 기대 사진을 찍기도 했던 것 같은데

그게 아니였나...


화려한 단청을 왜 다시 칠하지 않냐 물으니 그 옛날 조상들의 지혜로움이 없이는 지금 단청을 칠하면 나무가 썩어버린다고 한다.

눈이 핑핑 돌아갈 정도로 많은 정보와 탁월한 기술이 있는 작금에 단청을 칠하지 못한다는 건 참으로 애석하지만

단청없이 말간 나무색 그대로를 보여주는 전각이 참으로 다소곳하지만 함부로 하지 못할 기품있는 사람같이 느껴지기는 한다.






빼꼼 열린 대웅보전 옆문으로 들어가는 많은 사람들은 나무바닥에 머리를 조아리고 각자의 많은 번뇌와 아픔과 소원을 말하겠지.

부처님의 어깨가 좀 가벼워지라고 그냥 문으로 빼꼼 구경만 했다.

외갓집 마루바닥같은 나무바닥이 참으로 쑥 들어가고 싶게 만들었지만.


문화해설사님의 대웅보전 해설을 고대로 옮겨 봤는데.


대웅보전은 인조 11년에 청민선사가 중창한 것으로 약 400년 된 건물입니다.

400년 전에 이 법당을 지을 때 목수가 3년 동안 목침만 깎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절의 사미승이 목수에게 다가와 궁금해서 말을 걸었습니다.

 “손님! 손님은 목침만 깎고 절은 어느 세월에 지을 거요?”

하지만 목수는 아무 말대꾸도 하지 않고 목침만 깎았습니다.

그러자 화가 난 사미승은 은근히 미운 생각이 들어 목침 한 개를 감춰버렸습니다.

이때 목수는 묵언 수행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꼭 3년째 되는 날 목수는 집을 지어야겠다며 대패를 놓고 일어서 목침들을 하나 둘 세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목침 하나가 모자랐습니다.

목수는 아주 절망적인 표정으로 망태기 속에 연장을 챙기기 시작했고 절에 온 처음으로 스님에게 말을 했습니다.

“소인은 법당을 지을 인연이 없는 것 같사옵니다.”

스님이 연유를 묻자

“3년간 켠 목침 하나가 부족합니다. 제 경계가 부족하여 업연을 이루지 못하게 된 것 같사옵니다.”

그러자 스님이

“목침이 그대의 경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니 서둘러서 법당을 지으시오”

“스님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법당을 짓겠지만 목침 하나를 빼놓고 짓겠습니다.”

결국 목수는 목침 하나를 빼놓고 집을 완성하게 됐는데 이 대웅보전은 못하나 박지 않고 짜 맞춰진 보물291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그 빠진 목침을 확인 못했는데..아무리 봐도 모르겠던데.





고개를 쳐 들어 빠진 목침 찾는 것을 포기하고(설명을 똑띠 못들었나?) 

내소사가 자랑하는 또 하나 대웅보전 문살로 관심을 옮겼다.


이 문살은 우리나라 장식 문양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문살로 손꼽힌다

인간들의 눈으로 봤을 때 국화, 모란, 연꽃, 해바라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극락에서 피는 가장 아름다운 꽃이란다.

이 문살에도 대웅보전 천장처럼 극락세계를 표현해 놓은 것이라고 했다.






양산 통도사의 문살도 이런 모양이던데..






대웅보전 안에는 석가 불좌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봉안되어 있고, 

불화로는 영산후불탱화, 지장탱화 및 후불벽화로 '백의관음보살좌상'이 그려져 있는데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후불벽화로는 가장 규모가 큰 것이다. 

황금빛 날개를 가진 새가 그렸다고 하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정말 인간의 솜씨를 넘은 성스러운 모습이다. 

관음보살님의 눈을 보면서 좌 우로 왔다 갔다 해보면 관음보살님 눈동자가 내가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 움직이는데

(물론 사람에 따라 안보일 수도 있다.), 눈동자가 움직이는 모습이 보이면 소원이 이루어 진다는 속설이 있다.



눈동자가 보였나 안보였다 일단 소원 무작정 투척하고는 왔다.

관세음보살..





대웅보전의 천장을 유심히 보면 문고리가 보인다.


저 문고리가 극락으로 가는 문이란다.

이 천장에는 극락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이 피어있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새가 노래하며,

온갖 악기가 사방에 울려 퍼지고 있는 듯 한데 그것은 바로 극락세계를 표현한 것이란다.

극락으로 가고자 염원한다면 저 문고리를 열고 들어서야 한단다


가운데 천장 옆의 천장을 보면 꽃대 두마리가 있고 물고기가 돋을새김이 되어 있다

산중 사찰이지만 1km가 바다여서 바다에 사는 모든 생물들이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서 극락으로 가고자 하는

염원이 담겨져 있다고 한다.







대웅보전의 또 다른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있으니...


문화해설사의 해설 중


빠진 목침을 끼우지 못하고 대웅보전을 짓고 단청을 하게 되었는데 100일 동안 법당 안을 아무도 들여다보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또 사미승이 장난기가 발동하여 백일에서 하루 부족한 날 그만 문을 열어버렸습니다.

안을 보니 화공은 온데간데없고 새 한 마리가 입에 붓을 물고 날개에 물감을 묻혀서 벽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사미승이 문을 열자마자 새는 그림을 그리다가 날아가 버리고 아직도 하루 동안 색칠하지 못한 곳이 남아있습니다.

이 새는 바로 관음세음보살의 화신이었습니다.




같이 간 일행들은 대웅보전 안에서 열심히 단청도 확인하고 벽화도 확인하고 천장도 확인하고 꼼꼼하신 분들.

신발 벗기가 귀찮아 내처 밖에서 힐끔힐끔 딜다만 본 사람도 있는데.







산 중간에 있는 작은 암자가 바로 그림을 그리다 날아가 관세음보살의 화신인 새가 앉았던 곳일지도 

모른다는 우리 해설사님의 설명에 고개를 절로 끄덕끄덕..




지면의 높이차를 이용해 일부를 2층으로 구성한 설성당과 요사

건물의 지붕선이 뒤쪽이 산세와 조화를 이루게 올려진 것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한국 건축의 美 

바로 자연스러움 그 속에 같이 어우러지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맑은 하늘도 서서히 저물기 시작하는 시간

바쁘게 돌아갈 채비를 해야할 시간

아직 시선을 더 머물길 원하는데..





아직 떨어지지 않은 마지막 벚꽃을 확인하고 나니 비로소

이제 등 돌려 나가야겠구나.






부처님 오신날 경축 등은 미리 달렸고

기와 한장에도 많은 맘들이 담겨져 무겁게 차곡차곡 쌓였다.





할머니 당산나무에 두 손 모으고 기도하는 사람들의 소원이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리는 듯

고목의 허리가 휘지 않고 굳건한 것은 넓은 맘으로 모두를 가여이 여기는 할머니 맘 아닐까 싶다.


슬쩍 지나오면서 동전은 던지지 않았지만 내 맘속 작은 바램도 할매당산나무 한가지에 걸어두고 왔다.

바람에 날려가지 않고 오래오래 걸려 있으면 좋겠다.

내 작은 바램...


아주 오랜만에 들른 부안 내소사 전나무숲의 한그루 감나무가 자꾸 맴맴도는구나.